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빈 작가 Apr 28. 2022

경주에 있는 경주 월드 간 날은 생애 첫 여행이었다

엄마 에세이

내가 사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여행 간다는 건 나에게 큰 용기가 필요했다. 커가는 아이에게 많은 경험을 보여주고 싶은 엄마 마음과 나를 보호해 줄 사람 없이 제대로 경주에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반반이었다. 걱정스럽다고 못한 일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기에 아이와 약속했다.


"이제부터 엄마는 그 무엇이든 무서워하지 않을 거야. 그래서 주말에 엄마와 경주로 여행 가는 거야. 놀이동산 어때?"

"와!! 진짜. 진짜. 진짜 거기 놀이기구가 있는 거야. 나 탈 수 있어?"라고 궁금한 것들을 쏟아냈다. 


"그럼, 놀이기구가 많다고 하니 한번 가보자. 여니가 태어나고 단 한 번도 놀이동산에 가지 못해서 미안해. 앞으로 엄마가 있는 힘, 없는 힘 다해 함께 즐기면서 세상을 살아가자"라고 말했다.


그렇게 계획한 당일치기 모녀 여행은 시작되었다.


신경주 역이 생겨 기차를 타고 경주에 도착했지만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은 것에 참담했다. 이럴 때는 내가 운전을 못한다는 것이 싫었다. 여태껏 운전을 못한다는 것에 아쉬움이 없었는데 혼자 남게 되니 운전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 남았다는 걸 알았다.



역사에 도착하니 이쁜 인형이 있었다. 경주의 자랑.. 신라시대를 알려주는 인형 모형이 있었고 아이는 달려갔다. 다시는 신경주 역에 오지 않을 거 같아 아이에게 사진 찍자고 노래를 불렀다. 아이는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냉큼 인형 앞에 섰다. 얼마나 이쁘던지..


사랑스러운 아이를 눈에 담으면 언젠가 잊힐 거 같고 가슴에 담자니 마음이 아팠다. 결국 사진으로 남기게 되었다. 아이와 나에게 추억 한 장을 남기기 위해서는 사진이 필수였다.




이것저것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밖으로 나가니 경주월드 셔틀버스가 있다는 안내문은 있지만 그 어디에도 버스는 없었다. 운행을 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라 일단 경주월드로 가는 경주 시내버스를 선택했다. 아이는 놀이동산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뿐이라 엄마인 나에게 재촉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역사 광장에서 얼마나 뛰던지. 늘 외할머니와 함께 한 여행이었지만, 엄마와 단 둘이 하는 여행은 처음이라 더 설레는 아이였다. 가정 보육 중이던 작년 가을(2021년).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던 아이가 여행 간다는 말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이가 대견스러웠다.


쌀쌀한 날씨 덕분에 겉 옷을 한 벌 더 준비한 것이 가장 잘한 일이었다. 하지만 경주 월드 가는 일은 순조로웠지만 신경주역으로 가는 길은 순조롭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뚜벅이 여행의 묘미 아닐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하는 과정이 여행의 한 부분임을..




버스를 타고 내가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버렸다. 잠들어 버린 아이를 깨워 정신없이 한 코스 지난 정류소에 내렸고 멀리서 놀이기구가 보였다. 이때는 택시가 답이다. 


지나가는 빈 택시를 잡아 아이와 놀이동산으로 향했다. 잠에서 덜 깬 아이는 보채지 않고 왜 우리가 택시를 탔는지 궁금해했다.


"엄마가 버스 정류소를 놓쳤어. 그래서 택시를 타고 가야 많이 놀 수 있어"라고 안심시켰다.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은 아이에게도 불안한 요소였던 것이 분명했다. 엄마 말에 안심한 아이는 놀이 공원 입구에서 놀랐다. 웅장했던 것이다. 


생전 처음 본모습에 놀라다 못해 기뻐하는 걸 잊어버린 아이는 얼른 놀이기구 타자고 보챘다.

티켓을 끊어야 하는데 이때 또 한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다. 기차 시간을 생각해 아이가 많이 타지 않을 거라는 나의 짧은 생각으로 자유 이용권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놀이 기구 앞에서 표를 구할 수 있었던 옛 기억에 타고 싶은 것만 골라서 타면 될 듯했다. 결국 입장권만 끊어 놀이동산 입장을 하고 말았다. 나중에 안 거지만 자유이용권이 개이득이었다. 아니 시간이나 체력을 비축하는 것에는 자유이용권이 훨씬 나았다. 하나를 타던 두 개를 타던 비용으로 보면 자유 이용권이 더 저렴했던 것이다.




입장하니 책에서나 볼 법한 티브이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 아이 눈앞에 펼쳐졌다. 

"엄마 여기는 놀이기구가 없는데"

"여기는 입구라서 없어. 안으로 더 들어가면 기구가 많을 거야. 우리 구경하면서 걸어가 보자"


아이는 놀이기구 타는 것이 목적이었다. 엄마인 나는 타는 것보다 잔잔하게 공원을 구경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아이는 역시 동적이 아이였어. 엄마 기질대로 아이를 키우려니 아이가 힘들었던 것을 왜 몰랐을까?




첫 번째 놀이 기구를 타기 앞서 표를 구하려고 이리저리 헤매다 표 한장을 샀다. 그러나 매점과 매표소를 같이 운영하는 경주월드는 사람들로 인사인해였다. 긴 줄로 아이가 타고 싶은 기구 이름을 메모해서 한꺼번에 표를 끊어야 하는 걸 알지 못했다.


아이가 타고 싶다는 놀이 기구 하나를 위해 표를 끊고 보니 시간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놀이동산 한 바퀴를 돌고 아이가 타고 싶은 놀이 기구 이름를 메모해서 매표소에서 표를 끊어야 시간과 체력이 덜 사용했다. 


처음 탄 놀이기구는 재미가 없다고 투덜대었다. 이것 또 엄마만 생각한 거구나 알게 되었다.




놀이동산을 구경하며 아이가 가장 타고 싶은 놀이 기구 이름을 메모해 표를 샀다. 배고픔도 잊은 채 아이는 신기한 곳을 탐색하기 바빴다.

'여니야 여기보다 더 큰 놀이동산이 있다. 그건 바로 에버랜드라는 곳이야. 언젠가는 엄마가 할머니 모시고 에버랜드 가보자. 아마 사자와 호랑이를 만날 수 있는 곳이거든. 내년 가을에 꼭 가자'라고 나와 약속했다.


아아에게 보여줄 곳이 너무 많다. 그러나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온 엄마는 마음 준비가 필요했다. 일단, 운전면허증을 내고 너와 내가 원 없이 다니는 그날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지내고 있다.




공원을 돌아보며 몇 가지 놀이기구를 타고 싶다고 자신의 의사를 밝힌 아이와 표를 구하고 줄을 섰다. 이날 생각해보니 5가지는 탄 거 같았다. 자유이용권 비용보다 더 많은 값을 치르고 탔던 놀이 기구.


하지만 후회하지도 투덜대지도 않았다. 내가 선택한 것은 미련 따윈 있을 수 없다. 단지, 좋은 교훈으로 남겼다. 놀이동산을 가면 자유이용권을 끊어야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여행할 때는 오고 가는 교통편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는 걸 이날 놀이동산에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사랑해 앞에서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을 표현했다. 

아이 자라는 모습만 바라보면 밥 먹지 않아도 든든하다. 해맑은 아이, 엄마만 있으면 된다는 아이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아주 건강한 아이였다.




단풍잎이 곱게 물들인 어느 가을.

삼삼오오 놀러 온 커플과 가족을 보며 아이가 혹여 아빠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건 아닐까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 생각과 반대로 씩씩했고 활기찼다.




이날은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사진을 찍어준 아이였다. 원 없이 사진을 찍고 원 없이 영상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 나 잡아봐라" 말을 하며 앞으로 도망가는 아이를 따라잡지 않고 멍하니 아이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나와 다르게 살기를

나와 다르게 커기를

나와 다르게 생각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했다.




무섭게 생긴 모형 앞에서도 씩씩하게 사진 찍는 모습. 울듯 말듯한 아이 표정이었다.

"엄마 어서 찍어. 나 무서워" 하는 말에 영상으로 대체했다.

"여니야 여기는 여니가 들어갈 곳이 아닌가 봐. 키가 안되네. 더 커서 여기 가보자"

"왜 무서워?"

"응, 무서운 곳인가 봐. 우리는 다시 놀이 기구 타고 놀다 집에 가자"

아이는 알겠다며 자신이 가장 타고 싶은 놀이 기구를 콕 집어 말했다.




오솔길을 거닐고 있노라니 예전 휴양림 갔던 기억이 났다. 30대는 휴양림이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감정이 다르다. 


평온하고 평화롭고 안전하고 안심되는 느낌이 들었다. 사색하기 좋은 곳을 급히 빠져나왔다. 놀이 기구를 타고 신경주역으로 가기 바빴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과 타협하고 말았다.





두 번째 컵 놀이기구는 어지럽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어지러워도 열심히 운전한 아이는 "엄마도 좀 해봐"라고 말했다. "엄마는 지금 영상 찍고 있는데 여니가 하면 안 될까"라고 물었더니 알겠다며 자신이 운전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열심히 운전했던 컵은 시간이 되니 정지했다.




세 번째 놀이기구는 하늘로 나는 기구였다. 어디를 가든 줄이 길었다. 참고 기다리는 우리는 이윽고 탔다.

"엄마 하늘과 가까워져"

"정말 그렇네. 기분 좋아?'

"응, 너무 좋아. 다음에 또 오자"

"그래, 그때는 평일날 와서 마음껏 타자"


우리는 풍선 안에서 오손도손 이야기를 했다.




배고픔을 잊은 모녀는 놀이기구를 다 타고서야 매점으로 향했다.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건 '진라면 순한 맛'이었다. 집에서는 라면 반개 먹던 아이는 라면 한 개를 다 먹었다는 전설이 있다.

라면 하나로 나누어 먹을 계획한 나는 또다시 알게 되었다.

밖에서 먹는 라면은 뭐가 됐든 맛있는 법이고 집에서 반개를 먹었다면 밖에서는 한 개 아니 두 개를 먹을 수 있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걸. 


결국, 이날 나는 먹지 못했다. 국물까지 다 마신 아이는 엄마는 왜 안 먹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생존 본능이라서 그런가 자신 배를 채우고서야 "엄마 안 먹어"라고 물었다. 

"엄마는 집에서 먹으면 돼. 여니가 다 먹어서 엄마는 못 먹었다는 걸 모르는구나"

"앗, 엄마 너무 맛있었어. 그래서 다 먹었어"

"그렇게 맛있었어. 엄마가 집에서 만들어 준 라면 보다 더 맛있었던 거야?"

"응, 엄청 맛있어"

"그래, 네가 맛있다면 그걸로 됐어. 엄마는 집에서 많이 먹을 거야"


아이는 오랜만에 나온 세상에서 마음껏 즐겼고 마음껏 먹었다. 난 그걸로 만족한다. 우울해하는 아이보단 자신이 원하는 걸 다 하는 아이 모습이 더 좋으니깐.


라면 한 그릇을 비운 아이는 마지막 자동차 놀이기구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는 길에 너도 나도 사는 놀이동산 표 머리띠를 구입했다. 아이 눈에 '엄마 나도 갖고 싶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선 듯 말하지 못하는 아이는 자신 마음을 알고 있었다.

'이걸 사면 많이 가지고 놀지 못한다'는 자신을 알고 있어서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니가 가지고 싶은 거 있어"

"응, 나 유니콘"이라고 콕 집어 말한다.


내가 말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냐고 물었더니 그러면 참아야지. 근데 계속 생각났을 거야라고 말한다.


아이 마음을 읽는 건 나의 마음을 읽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 아이 눈만 보면 아니깐.



해맑게 웃는 아이 모습을 꼭 지켜주리라 다짐했다. 당일치기에다 기차 시간으로 조금 놀았지만 아이는 대단한 만족을 했다.


가는 길에 마술 공연을 보다 우리는 버스 정류소로 가야 했다. 

"엄마 너무 재미있었어"

"그래 그걸로 만족해. 피곤하지 않아?"

"아니. 기분 좋아"


우리가 타고 온 버스는 1시간 후 도착이라는 버스도착 알림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마냥 기다리자니 기차를 놓칠 거 같고 결국 차선책인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자마자 잠든 아이를 보며 버스보다 택시 타기를 잘했구나 싶었다.


택시비는 두배로 나왔지만 아이가 편안하게 잘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신나게 논 아이는 택시를 타고서야 피곤함이 몰려온 것이다. 엄마 무릎을 베고 잠든 아이는 새근새근 잠들고 있었다.




택시에서 깊이 잠든 아이를 깨워 기차를 기다렸다. 피곤하지만 집으로 가야 하는 걸 안 아이는 보채지 않았다. 


모녀의 첫 번째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해외로 나갔을 우리 모녀.

베트남 여행을 계획하다 무산되었으니깐.


언젠가는 내가 계획한 모든 일이 이루어지리라 믿으며 작년 가을 추억을 소환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맛집 카페를 찾는 이유를 알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