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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Sep 22. 2023

내 삶을 바꾸는 경이로운 힘은 네 가지 질문이다

도서 서평

글을 쓰다 보면 예전에 알게 된 이웃님이 잊지 않고 제 글에 댓글을 남겨줄 때 참 행복하고 '이 일을 잘했구나' 싶어요.

며칠 전 남겼던 '리듬'책에 반갑게도 댓글을 남겨주셨죠. 기분이 확 좋아져 답 댓글을 남겼습니다. 인연을 맺기가 어렵지 한번 맺은 인연은 제가 먼저 놓지는 않아요. 그들이 떠난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사람 관계에 너무 애쓰지 말자라고 다짐했던 때가 2019년이었어요. 한 사람 한 사람 관계에 연연하다 보니 제정신이 피폐해지고 피곤했죠. 책을 읽으면서 사람 관계, 인연 관계에 대해 저만의 철학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인연이면 내 곁에 끝까지 남을 거야' 하는 생각에 미치자 내가 쓴 글에 댓글을 달던 달지 않던 악플을 달든 말든 지적을 하든 말든 '이 또한 인연이구나'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 제 생각도 그렇게 흘러갔어요. 

사람에게 연연하다 보면 상대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되고 그 기대가 못 미치면 화가 나고 괴롭기 시작했어요. 

사실 저는 상대 마음에 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인간관계를 끌고 갔어요. 그럴 때마다 제 몸은 아팠거든요. 안 되는 일에 전전긍긍하며 인간관계를 맺다 보니 상대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고 그동안 내가 노력했던 것들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해 저 자신을 자학하고 미워하는 일이 반복되었어요.

이건 타인의 눈에 집중했던 거 같아요. '나는 지인이 많은 사람이야'라는 허울 좋은 모습을 그렸던 것이지요. 

재혼 후 딸을 낳고 보니 제 삶이 참 안쓰러웠어요.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과 무관하게 흐르던 인생에 한없이 무기력함을 느꼈고 내가 살고 있는 그 공간이 싫어서 매번 엄마 곁을 찾아야 했어요. 그렇게 이루어진 별거 속에서 인간관계도 배우고 제 마음도 알게 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방향도 잡히게 되었어요. 

핏줄로 연결된 형제자매라도 나를 싫어한다면 목메지 말고 그들이 나를 싫어하는 이유에 대한 변명은 하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이 평가한 말대로 나를 미워하고 나쁘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인연을 끊는다면 저는 그들 손을 놓으면 되는 거거든요. 결국 내 곁에 머물 인연은 세상을 빙빙 돌아 다시 연결된다는 우주 법칙을 자주 봐와서 억지로 저와 인연 맺기를 원하지 않아요. 그리고 나를 변명하지 않았어요. 

인간관계는 죽을 때까지 가져가야 할 문제잖아요. 딸을 보면 교우 관계를 힘들어했어요.

여니는 사회생활을 늦게 한 아이이거든요. 유치원을 7살에 갔고 엄마와 함께 지낸 시간이 6년이라서 자신과 다른 성향을 가진 친구를 만나면 슬슬 피했어요. 이런 아이가 과연 유치원 생활을 잘할까 걱정하면서도 아이를 믿었어요. 내가 아이를 믿지 않으면 누가 아이를 믿어줄까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면서 저의 내면 안에는 두려움에 떠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울면서 서있어요. 혹여 내 아이가 엄마와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낼까 봐 수면 위로 떠오르는 저의 어린아이를 숨죽이며 바라봤어요. 

딸의 유치원 생활은 그야말로 좌충우돌이었으며 자신과 결이 맞는 친구와 사귀게 되었고 자신과 같은 성향의 친구와 부딪히기도 했어요. 

딸은 직접 부딪히고 좌절하면서도 그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는 아이를 바라보며 저와 확연히 달랐어요. 내 뱃속에서 태어난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저보다 몇천 번 나아 놀랄 때가 많았죠.

초등학교 시절 저는 말이 없는 여자아이였어요. 존재감이 없는 아이라고 말하면 내가 너무 초라하지만 맞는 말이에요. 촌지를 받지 못한 선생님은 제 짝꿍으로 장애인을 앉히거나 말을 듣지 않은 남학생을 앉혔어요. 아니면 혼자이거나. 이런 역사를 쭉 펼쳐보니 제가 너무 안쓰럽네요. 엄마는 가정 형편이 어렵다며 선생님의 가정 방문을 피했고 학교 가는 것도 피했어요.

그러니 저는 학교에서 미운 오리 세끼이냥 미움을 받았어요. 기가 죽으니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요. 집에서도 아버지 눈치를 보는데 학교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죠. 저의 의견이나 소신을 말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이런 나를 아이가 닮았을까 봐 제가 아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딸들에게 알려주려고 노력했어요. 

"몸이 불편하거나 배가 아프거나 소변이 보고 싶으면 무조건 선생님에게 말해야 해"

"불편한 마음을 선생님이나 친구들, 엄마에게, 어른들에게 말하지 않으면 지금 네가 아픈지 슬픈지 몰라. 네가 아픈 줄도 모르고 함부로 말해. 그러니 무조건 말을 해야 해"

딸이 유치원 갈 때마다 매번 했던 말이었어요. 속 마음과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은 아이에게 저처럼 바보가 될까 봐 귀에 닳도록 말했어요.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니거든요. 

저는 제 몸 아픈 것도 참고 버틴 사람이거든요. 결국 큰 병이 와서야 깨닫는 아주 바보 같은 사람이라서 아이에게만은 그런 인생을 살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줘야 했어요.

유치원 생활은 자유롭지만 학교는 또 다르잖아요. 학교에 입학하고 한 달 동안 "수업이 끝나면 쉬는 시간이잖아. 그 쉬는 시간에 화장실 안 가게 되면 수업 시간에 화장실 갈 수 없어. 그러니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을 가야 해. 유치원 하고 많이 달라. 엄마가 무슨 말하는지 알지"라고 물었어요. 아이는 '지금은 아무 때나 화장실 가도 돼'라고 말해요. 

지금은 학교 적응 기간이라 선생님이 보내주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쉬는 시간에 화장실 갔다 오라고 말할걸. 그러니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수다는 뒤로 미루고 일단 화장실부터 가야 해. 참다가 옷에 싸면 친구들이 뭐라고 할 거 같아라고 물었더니 부끄럽고 창피하다면서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 간다고 하더라고요.

1학기가 지나고 2학기가 되니 어느 정도 화장실 패턴도 자리를 잡았더라고요. 자주 화장실 가지 않아도 소변이 마렵지 않다고요. 응가도 배 아프면 학교에서 한다고 하니 이젠 제법 편안하게 느끼는 공간이 되어 저는 안심이 되었어요.

여기서 저의 어린 시절 내면 아이가 무엇으로 아파하는지 아시겠죠. 저는 소변이 마려워도 배가 아파 대변이 보고 싶어도 수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참고 참다 옷에 실례할 때가 몇 번 있었어요.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고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기도 했어요.

학교 화장실이 무서워 집에 가서 볼일 볼 거라고 참다가 실수할 때도 있었으니 아주 섬세하고 예민한 저였어요. 학교와 집은 불안한 공간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쉴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학교에서는 손을 들고 배 아프다 소변이 마렵다 화장실 가고 싶다, 양호실 가고 싶다 말을 못 했어요. 눈치가 보여서요. 어린 시절 상처가 내면에 아직 있으니 내 아이마저 나처럼 말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다 옷에 실례하고 속상해하는 건 아닌가 걱정을 많이 했어요.

두 딸은 참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여니는 아니었어요. 소변을 참고 참다 결국 옷에 사버리고 응가도 참다 참다 팬티에 묻히는 일이 빈번했어요. 생리 현상을 참는 아이 내면은 아무래도 불안함이 가득했을 거예요. 집이 불안 불안했고 엄마가 늘 불안함에 떨고 있었으니 아이 역시 엄마와 같이 불안해하며 살았지 싶어요. 불안함을 저처럼 대소변을 참고 참으며 불안함을 떨쳐낼 수 있는 임시방편을 만들었던 거 같아요. 

저의 내면에 아파하고 상처 입은 아이는 수없이 많아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저의 내면 아이가 불쑥 나와 울어요. 무섭다고 아프다고요. 특히나 여니를 키우면서 저의 내면 아이가 수없이 울고 또 울었죠. 모든 게 불안했던 현실에서 아이가 불안해하는 것을 찾아 안정시켜야 했고 내 내면에 불안해하는 아이를 수면 위로 올려 '이제는 안전해. 아파할 필요 없어. 너를 지켜 줄 안전지대거든. 너를 미워하고 비난하는 선생님도 없고 친구도 없어. 무서워하는 너를 꼭 안아줄게'라고 말하며 양팔을 벌려 저를 꼭 안아줍니다.

아이의 불안함이 이제는 안정을 찾았고 알아서 화장실을 다녀와서 외출을 하거나 학교생활 역시 화장실을 미리 다녀오는 습관이 잘 형성되어서 안심해요.

저는 아이에게 엄마 어린 시절 나약한 존재라는 걸 말해줘요. 지금도 무섭지만 어른이라서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말하면서요. 아이는 놀래요. 무슨 일이든 잘 해결하는 엄마가 자기처럼 힘이 없는 아이라는 것이 신기한 거죠.

육아를 하다 보면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엄마를 키우는 거라고 하잖아요. 정말 맞아요.

내면 안에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는 아이를 꺼내어 먹구름을 걷어내고 있어요. 

인간관계는 내가 애쓴다고 내 곁에 머물지 않아요. 가라고 해도 가지 않기도 하고요. 그러니 관계에 애쓰지 말아요. 나와 아이의 관계에서도 애쓰지 않아도 알아서 자신의 길을 찾는 거 같아요. 엄마만 바라보지 않아도 아이는 엄마를 사랑스럽게 바라봐요. 저 또한 아이를 한없이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말해요.

딸과 저는 수면 위로 올라온 상처가 여물어 가면서 스스로 자신의 세상을 살아가요. 불안함 속에서 교우 관계를 맺으며 자신과 결이 맞는 친구와 놀기도 하고 의견도 내는 아이를 바라보며 흐뭇해요.

저 또한 관계 맺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고 오는 이 막지 않고 가는 이 붙잡지 않기로 하자 삶이 심플해졌어요.

오늘 서두가 길어졌네요.

소개하고 서평 할 책은 「네 가지 질문」입니다. 심리서라서 내용이 약간 어려워요. 

정말 몇 장 읽지 못한 책인데요. 이렇게라도 서평 해야 네 가지 질문 책을 펼치게 될 거 같아서 선택했어요.



네 가지 질문


오래된 책이고 저는 중고 서점에서 구입했어요.

굳이 새 책이 필요할까 싶어 중고 서점에 가서 샀거든요.

읽다 보니 너무 어려운 거예요. 심리서나 정신 분야를 쉽게 풀어쓴 책은 없을까 찾기도 했던 거 같아요.



네 가지 질문


불안하고 초조해서 내가 나를 먼저 알아야 했고 두려움과 무서움에서 벗어나려고 갖은 노력한 것이 책꽂이에 꽂힌 책들입니다.

책만이 저를 위로해 주고 안아줬어요. 울고 싶으면 울어라고.

어른들은 그랬거든요. "울지 마. 울지 말라고. 울면 너를 버릴 거야"라고요. 저를 버릴까 봐 울고 싶어도 속으로 울었던 어린 시절 저는 두 딸에게 울지 못하게 했어요. 제가 울지 못했으니 큰 소리 내며 우는 아이들을 받아줄 수 없었어요.

아이들과 헤어지고 여니를 낳고 보니 울지 말라는 단어가 대물림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여니에게는 울게 둡니다.

어떨 때는 아이 우는소리가 듣기 싫어 '뚝'이라는 말을 하곤 해요.



네 가지 질문

여니는 두 언니보다 성향이 아주 강했어요. 달래면 더 화를 내고 더 많이 우는 아이라서 울도록 내버려 둡니다.

여니는 자신이 마음에 들 때까지 울다 어느 순간 그치고 슬그머니 제 곁에 다가와 아무렇지 않게 놀아요. 몇 번이고 달래려고 노력해도 말을 듣지 않던 아이는 '엄마도 이렇게 울어봐. 울면 가슴이 시원해' 말하는 거 같았어요.

울지 못하니 아이가 저를 울게 해주는 듯했죠. 공부하지 않던 엄마는 두 딸에게 상처를 줬지만 공부하는 엄마가 되고 나니 아이 메시지를 읽게 됩니다.

억압과 속박 속에 살았던 어린 나. 훌쩍이며 눈물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던 어린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 큰 소리로 우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두 뺨에 눈물이 흐르도록 놔둬요. 이런 엄마 모습을 딸은 아무렇지 않게 봐요.

놀리지도 않고 엄마 왜 울어라고 묻지 않아요. 엄마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그저 곁에서 지켜줘요. 

모녀는 참 많이 성장했죠?



네 가지 질문


그대의 참된 본성을 깨닫기 위해서는 알맞은 때와 알맞은 조건을 기다려야 한다. 때가 되면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 깨어나게 된다. 그대는 알게 된다. 그대가 찾은 것은 그대 자신의 것이며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불경



네 가지 질문


우리는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차원으로 들아가고 있습니다. 내면으로..



네 가지 질문


현실을 거부하면 나 자신이 괴롭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실이 있는 그대로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실을 거부하면 긴장하고 좌절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마음이 편안하거나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우리가 현실에 맞서기를 멈출 때 행동은 단순하게, 물 흐르듯이, 친절하게, 두려움 없이 일어납니다.


네 가지 질문

고통을 일으키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생각에 대한 집착입니다. 생각에 집착한다는 것은 그 생각을 살펴보지 않은 채 진실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때로는 아주 오랫동안, 집착하는 생각입니다.

→ 저 여기까지 읽고 덮어버렸어요.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요. 책 내용이 어려운 것도 있지만 내 안에 아픔을 몰랐기에 거부반응이었던 거예요. 

지금은 어느 정도 아픔과 슬픔, 상처를 도려내는 작업을 꾸준히 해서 책 내용을 이해하지만, 그 시절 그때는 부정했던 거예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난 이런 내용을 원한 게 아니야. 난 이런 걸로 안 아픈데' 부정했고 내가 나를 몰랐기에 책을 덮었어요.

지금은 읽으면 읽을수록 아픈 내면을 들여볼 자신이 있고 저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처음은 모든 것이 두렵고 아파요. 거부 반응도 보이고요. 현실을 부정하는 거지요. 하지만 자꾸만 접하다 보면 '아하'라는 단어가 입 밖으로 나와요.

꾸준히 나를 알아가야 해요. 마음 챙김은 남이 아닌 나부터 시작해야 해요. 글이 안 풀려서 쓰고 지우다를 반복하다 보니 점심시간이네요. 항생제를 먹어야 하니 야채 찜으로 한 끼 해결하려고 해요.

여러분들도 맛있는 음식으로 즐겁게 오후를 맞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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