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자의 도전기
2018. 12. 어느 날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늦둥이를 출산함과 동시에 욕망이 샘솟았다. 뭐를 해야 내가 원하는 걸 충족시킬까?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아이가 첫돌이 되기 전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야! 나 돈 벌고 싶은데 아이를 보며 즉, 육아도 하고 살림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없을까” “언니야! 그런 게 어디있노! 마 아이나 잘 키워라! 그게 돈 버는 거지! 아이 맡기고 언니 일하다 아프면 오히려 버는 것보다 돈을 더 쓰는 격 된다. 마 형부가 벌어주는 돈으로 가정이나 잘 꾸리래이” 동생에게 한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답답했다.(가슴이 답답하다 소리는 43개월 아이가 계속하고 있다. 엄마 심정을 읽었을 터)
분명히 어딘가에 나를 위해 멋진 일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다. 동생에게 엄마에게 남편에게 말해봤자 긍정보다는 부정이 먼저였기에 혼자 아등바등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사실 남편은 남자들이 많은 곳에 일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늦둥이 임신 전에 작은 회사에 입사를 했고 퇴근 전까지 10분 간격으로 전화가 왔다. 그러다 아파트 상가에 블록방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시간도 좋고 힘든 일이 아닌 것도 마음에 들었고 뭐니 뭐니 해도 아이들이 있는 곳이라 남편이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였다.
2015년 경기가 최고로 나쁠 때 매장을 오픈했고 거기에 따른 빚을 안고 있어 내 힘으로 갚으려는 생각이 강했다. 푼돈 모아 목돈이 된다는 진리를 어릴 때부터 알았기에 일단 뭐라도 벌어보자는 마인드로 시작한 아르바이트. 어느 정도 블록에 대해 알아갈 때쯤 늦둥이가 찾아왔고 결국 막달 되기 전에 그만두었다. 육아를 하며 ‘돈을 벌어야지’ 생각이 들 때가 아이 첫 돌이 지나면서 슬금슬금 올라왔고 반찬 값 아껴 몰래 저축한 돈으로 중고나라에 판매하는 화장품을 구입해 되파는 것을 선택하게 되었다. 쓰지 않는 물품, 화장품, 신발, 옷 등 아이를 업고 사진을 찍고 또 찍어 사이트에 올리기 시작했다. 중고 앱 사이트만 6군데에 올렸으니 육아하면 소소한 돈벌이가 될 거라는 생각이 했다. 예민한 아이를 업고 혼자 고군분투하며 내 물건이 좋다며 서로 연락이 올 때마다 힘들던 육아가 힘들지 않았고 희망찬 하루를 맞이하고 끝을 냈다. 그러다 중고로 판매할 물품이 똑 떨어질 때쯤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부정적인 그들에게 피드백을 듣는 대신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사람은 궁핍하거나 절실하면 무엇이든 하려는 습성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러다 독서를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한마디에 독서를 하기 시작했다. 독서를 하기 시작했던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이벤트에 당첨되지 않았던 나는 스스로를 부정 동굴에 가두었다. 응모하지 않았는데도 덜컥 당첨된 건 말고는 가지고 싶은 물건들은 당첨자 명단에서 비켜갔다. 2018년 12월 김유라 작가님을 알게 되면서 김유라 작가님이 운영하는 카페에 회원을 가입하면서 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운이었기에 그 당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절실하니깐 구구절절 절실함을 녹인 글들로 당첨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독서에 재미를 붙이는 계기가 바로 내가 원했던 책이었다. 어릴 때부터 책 읽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수면제라고 생각했고 끝까지 완독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김유라 작가님이 추천한 책은 나의 절실함과 절박함을 채워주기 적합했다. 돈을 벌기 위해 부동산 투자, 경매 책을 접하려는 굳은 신념으로 마음을 먹었지만 점점 독서는 다른 쪽의 파트로 눈이 돌아가고 있었다. 바로 심리서였다. 남편과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돌파구와 방법을 찾으려고 심리서를 읽기 시작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비싼 밥 먹고 욕을 들어야 하나!' 온갖 생각과 잡념에 빠질 때였으니 심리서가 그 당시 가장 적합했다. 그리하여 심리서와 경매책 부동산 책을 병행하며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상대를 바꿀 수가 없다는 절망감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내 곁에 있는 ’저 인간‘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인지시킬 방법만 몰두했던 지난 시간들이 잘못된 생각이었다. 책속에서는 말했다, '그들은 바꿀 수가 없다. 바꿔지지 않는다. 방법은 단 하나, 당신이 바뀌어야 한다'라는 글귀를 보는 순간 하늘이 무너졌다. 왜 하늘이 무너졌을까? 나를 바꾸기 싫었던 함정, 나는 너보다 낫다는 함정, 나는 너에게 상처 주지 않았다는 함정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분명 돈을 벌기 위해 독서를 시작했지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나를 알아가며 상대를 이해하는 과정이 보물처럼 다가왔다. 독서한 지 1년 8개월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내가 투병을 이기는 일 중 독서는 최고로 꼽는다. 건강을 되찾고 나를 알아가면서 상대를 이해하는 과정이 어려운 일이 아닌 남의 일이 아닌 해결하는 힘이 생긴 것에 위안을 받고 있다. 독서는 왜 하는 걸까? 죽어가는 생명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비법은 뭘까?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고 맛볼 수 비법은 독서이다. 새 생명을 안겨주었던 2002년 5월과 2012년 5월은 내가 이 세상에 보답할 일이 분명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깨달았다. 45년을 살아가면서 억울했던 삶, 지쳤던 삶, 재수가 없다고 한 삶들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들이 모여 나의 자양분이 되었다.
부모가 형제가 지인이 말해주지도 위로해주지도 않았지만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힘들고 지칠 때면 위로조차 책이 되었다. 1년 8개월 동안 180권의 책은 나약한 나, 병들어 있는 나에게 힘이 되어주었고 자양분이 되어주었으며 위로해주었다. 부정이 들 때마다 저자들은 나에게 응원해주었다. ’ 넌 할 수 있어! 충분한 가치가 있어! 용기는 충분히 있어! 너는 뭐든 잘할 거야 ‘ 등등 좌절하기 전에 일으켜 세운다. 병은 나약함에서 존재한다. 내면이 단단하다면 무너지지 않았을 건강이 부정을 끌어안고 살았기에 병이 슬금슬금 가장 약한 부위에 자리를 잡고 만다.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보잘것없는 인생, 돈에 쪼들어 사는 인생, 전전긍긍 병이 더 악화될까 봐 두려워하는 존재로 나를 꽁꽁 숨기고 살았을 것이다. 이제는 두렵지 않다. 나는 나를 믿으니깐. 강요하지도 않는다. 내가 좋은 것은 상대에게는 상처가 되니깐. 더 이상 오지랖 래퍼는 그만두었다. 설사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나만 좋으면 된다는 믿음으로 살아간다.
독서는 병든 자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희망이다. 매일 새벽 3시까지 독서하는 습관은 1년 8개월이 되었다. 새벽까지 책을 읽는 나를 상상해보지 않았다. 밤 10시에는 취침해야 했고 아침 8시면 일어나 아침을 먹어야 하는 루틴을 43개월 아이로 인해 산산이 무너졌다. 10년 동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패턴은 학교를 다니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길러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맞는 패턴이 아니었다. 그저 상대를 맞추기 위한 패턴임을 43개월 아이를 통해 깨달았다. 43개월 아이는 자신이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아이. 즉 자유인이었다. 나의 어린시절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이는 착한아이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말이 진짜인줄 알았다. 결혼한 후 신랑 아침밥은 무리었던것은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억지로 책임감으로 하고 있다는 걸. 결혼 10년 동안 유년시절 받아왔던 강요가 그대로 내 아이들에게 대물림되고 있었다. 모든 일과가 마무리되는 밤 10시 더 놀고 싶은 아이들을 내 기준으로 맞추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면 학교에서 유치원에서 힘들지 않을까? 내 기준대로 아이들을 키우기 시작했고 이것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저질 체력을 두 아이가 닮았을까 전전긍긍한 내 모습이 책을 통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허용 할 수 있는 범위는 주말이었고 나름대로 아이들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함으로 허용했지만 육아만큼은 트러블이 많았던 부부는 결국 서로 의견이 달라 잦은 싸움으로 이어졌다.
아이들에게 강요한 바른생활은 더 멋진 어른이 되는 길이라며 엄마말, 아빠말만 잘 들어야한다고 교육했던 나는 바보짓을 했다. 내가 받았던 교육은 멋진 어른이 아닌 나약한 내가 되어버렸고 스스로 스트레스를 풀지 못해 내 몸을 병들게 만들었다. 나는 달라졌다. 책 읽는 엄마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독서는 시간낭비뿐이었다. 늦둥이에게는 허용치 범위가 넓었다. 자는거, 먹는거, 입는 거 이 모든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하게끔 내버려 두었다. 나도 좋고 너도 좋은 방법이 자신이 하고플때 하는거니깐. 아이는 소유물이 아닌 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허용 범위가 방대하다보니 주위 가족들은 자신의 기준에서 제각각 소리르 내기 시작했다. ’ 늦게 자면 키가 안 큰다. 언니 많이 변했네. 예전 언니가 아니다. 아이를 왜 이런 식으로 키우냐 ‘등등 온갖 부정의 시선과 비난이 쏟아졌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면 늦둥이는 두 아이와 달랐다. 패턴을 내 식대로 구미에 당기게 만들어 놓지만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오는 아이었다. 결국 내 손에서 떠나 아이의 패턴은 24개월 되기 전에 내려놓음을 했다. 1년 동안 지켜보던 친정엄마는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확실히 변해버렸다. 43개월 아이는 엄마의 고정관념을 확 깨트린 아이이다. 일찍 자고싶거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못하게 될때 남과의 비교의식이 생길때마다 스스로 다짐한다. ’ 그래 너와 내가 성장하는 시간이지. 함께 책 읽고 놀다 자자꾸나!‘ 관점을 바꾸니 너무나 편안하게 지낼수 있었다. 새벽 3시 함께 잠들어도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다. 나에게 맞는 패턴을 찾았기 때문이다. 늦게 시작하는 아침은 오후 12시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생활하며 나만의 루틴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를 자부한다. 육아와 살림은 아주 최소한으로 남는 시간은 내 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토록 찾고 있던 패턴은 남의 일상이 아닌 오로지 나만을 위한 패턴임을 알기에 그 누구에게도 강요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하는 일들을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최소한 삼시세끼 먹으며 살림도 하니깐 말이다. 그렇다고 아이를 방치를 하는 것도 아니다. 심심해하면 산책도 하고 킥보드도 타며 즐겁게 생활을 하고 있다.
투병 자라고, 환자라고 나약한 시선을 접어두자. 그들에게도 열망과 열정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