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수능을 치고 대입 원서를 쓸 때도 새내기가 되어 밤늦게 귀가하던 대학 시절도
첫 직장을 다닐 때도 심지어 연애라곤 한 번 한 적 없던 딸이 첫 연애에 결혼을 할 때도
아버지는 어떤 의견도 내지 않으셨고 어떤 참견도 없으셨습니다.
무심함인지 외면인지 이런 아버지의 태도가 어느 날은 감사하고 어느 날은 섭섭했습니다.
연애라고는 한 번도 하지 못한 제가 25살 첫 연애에 결혼을 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도
아버지는 크게 가타부타하지 않으셨습니다.
20년 전 한 남자를 집으로 데리고 와 인사시킨 그날을 기억합니다.
딸이 남자를 데리고 오겠다는데 아버지의 표정은 여느 때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그날도 일찍이 출근하셨고 귀가시간에 맞추어 귀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집안에 들어서면서 낯선 한 남자를 마주합니다.
"어. 자네가 그 서울 친군가?"
"아. 네! 안녕하십니까. 000이라고 합니다."
"어 그래. 대구 온다고 수고했네. 잠깐만 기다리게."
아버지는 손을 씻고 와 차려놓은 저녁상 앞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낯선 남자에게 식사를 권하십니다.
딸이 결혼하겠다고 데려온 낯선 남자에게 "서울 친구"라는 표현을 쓰시며
서먹함을 만회해보고자 했음이 아버지의 노력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낯선 남자에게 '학교는 어디를 나왔나? 무슨 일을 하느냐? 계획이 무엇이냐? 는 등의 질문은 하나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양친은 건강하신가?" "오느라 수고 많았으니 많이 들게"가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저녁식사시간이 끝나고 "잠은 어디서 자는가? 여기서 자도 되네." 하셨습니다.
이것으로 사위면접은 끝났고 낯선 남자는 사위로 통과되었습니다.
아니 대체 어떻게 왜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느냔 말입니다.
아버지 손을 잡고 버진 로드 끝에 섰습니다.
아버지가 손을 꼭 잡습니다. 흰 장갑 낀 아버지의 손이 뜨겁습니다. 긴장한 저의 손은 차갑습니다.
아버지가 "손이 왜 이리 차노. 아무것도 아니다. 걱정 마라." 하며 두 손으로 내 손을 잡아 주십니다.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자." 아버지가 제 손을 잘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 끝에 서 있는 남자에게 다가갈수록 더욱 꼭 잡아 주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아버지가 가진 에너지와 아버지가 제게 하고 싶었던 모든 말을 그렇게 전달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 아빠는 사위 볼 때 너무 쉽게 허락한 것 같아. 그지?"
"너희 아빠가 아무것도 안 본 것 같나? 니 박서방 만나고 늦으면 안 자고 기다리고, 니 전화 안 오면 전화해 보라 하고, 박서방이 너한테 이것저것 선물 보내면 그거 보면서 기뻐하고, 박서방 인사 왔을 때 얼굴에 당당함이 있다고 차돌 같다고 아빠가 그랬다."
표현이 서툰 아버지는 낯선 남자가 나를 향해 표현하는 모든 상황들을 눈여겨보고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늘 한 걸음 뒤에서 모든 상황을 보고 계십니다.
모르는 척했을 뿐 모든 걸 알고 계십니다.
아버지에게 없는 모습으로 사랑을 표현해 주는 서울친구가 아버지 성격을 닮아 끙끙 앓는 딸에게
꼭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나를 바라보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나를 믿고 기다려 준 아버지에게 감히 방관이라 마음 품었던 이 딸을 아버지가 용서해 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