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ㅇㅇㅇ님. 혈액형이 뭐지요?"
"O형이요."
"ㅇㅇㅇ님. 혈액형 A형인데요."
"네? 아닌데요. O형입니다"
"아버님. 내일 수술해야 해서 어제 채혈했고 결과 나왔는데 A형이에요."
간호원이 다시 말했습니다. 믿기지가 않으신지 아버지 요청으로 네 번이나 혈액형검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내일 수술을 앞둔 아버지는 70 평생을 O형이라 믿고 살아온 당신의 혈액형이 A형이란 사실에 수술에 대한 긴장보다 너털웃음이 납니다.
"허허. 이런 일도 있네요. 참..."
내일이 수술이라 아버지 병원에 들렀습니다. 수술이라는데 아버지 얼굴에 긴장이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제 앞에서 긴장이라는 걸 드러낼 분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대신 저를 보더니 환희 웃으십니다. 무슨 일인가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런 이슈가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70년을 큰 병 없이 건강히 살아오셨다는 증거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따지고 보면 아버지는 늘 A형 같은 O형이라고 우리가 이야기했습니다.
세심하고 꼼꼼하기가 말도 못 했습니다.
"이 집은 화장실은 환풍기랑 등이 동시에 켜져서 불편하네." 엄마가 한 마디 하십니다.
"나 다녀오리다."하고 출근길에 오르신 아버지는 엄마의 말에 이렇다 할 반응도 보이지 않고 휙 떠납니다.
엄마는 이런 아빠에게 늘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진짜... 으이구..."
퇴근하신 아빠 손에 이것저것 들려 있습니다.
"이거 뭐예요?" 엄마의 물음에 또 대꾸가 없습니다.
하지만 몸이 부지런을 냅니다. 저녁 진지는 일 다하고 드시겠다 하시고 화장실 스위치를 뜯으십니다.
그리고서 화장실 내의 환풍기에서 따로 선을 빼시더니 쫄대로 깔끔하게 전기선도 안 보이게 정리하시고 실리콘까지 다 바른 후 화장실 등 스위치와 환풍기 스위치를 분리해 놓으셨습니다.
"여기, 이거 한 번 봐. 위쪽이 화장실 등 스위치고 아래가 환풍기 스위치예요."
"아이고. 여보. 말 좀 해 주면 내가 뭐라 한답디까. 당신도 참..... 고마워요. 훨씬 편하고 좋네요.
저녁 들어요. 배고프겠다."
아버지는 세심했습니다. 단지 말로 하는 표현에 서툴렀을 뿐이었습니다.
"진아. 아빠가 너 데려다준다고 너네 집에 갔다. 니 가방하고 챙기가 내려가 봐라."
회사 교육으로 1박 2일 집을 비워야 할 상황이 생겼습니다.
캄캄한 새벽부터 준비로 분주한데 엄마가 전화가 왔습니다.
1박 2일 동안 근처 친정집에서 아이들이 등하교할 수 있도록 부탁드렸습니다.
이미 아이들을 맡긴 것도 염치가 없어 죽겠는데 새벽기차를 타야 하는 저를 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아버지가 오시고 계신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집 아래에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행여나 제가 추울까 봐 자동차 히터까지 빵빵하게 틀어 놓고 말입니다.
"아빠는 전화 주시지. 나 먼저 갔으면 어쩔 뻔했어요."
"아빠 있는데 뭐 하러 택시 타노. 아빠가 태워주면 되지. 애들은 걱정 말고 마음 편하게 일하고 와라."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사실 그즈음하여 몸과 마음이 곤궁했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에게도 늘 미안했습니다.
늦게 끝나는 일, 잦은 교육, 아이들에게 내가 과연 도움이 될까 싶은 고민들이 주를 이루던 때였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다 아셨는지 제게 그 말을 꼭 해주고 싶어 일부러 오신 듯했습니다.
그리고선 오며 가며 맛있는 것 먹고 구경도 하라고 용돈을 주십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아버지 손에 다시 쥐어 드리는 것도 그냥 놓고 내리는 것도 어느 것 하나 마음에 합한 것이 없기에 "아빠. 언제 준비했데요. 감사해요" 하고 받았습니다.
"조심히 다녀오너라. 아무 걱정 말고." 그렇게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아버지는 딸을 배웅했습니다.
아버지는 세심하고 자상했습니다.
아버지는 늘 마음을 읽으셨고 그 천근만근 무거워진 마음들을 덜어지고자 애쓰셨습니다.
천근만근이던 마음의 무게를 말없이 덜어 주셨던 아버지가 무척이나 보고 싶습니다.
저마다 이제야 각자 삶의 무게를 온전히 짊어지고 갑니다.
책임감으로 희생으로 사랑으로 지고 있는 이 무거운 것을
아버지는 자신의 것에 가족들의 것까지 덜어지셨던 것입니다.
책임감과 사랑함, 돌봄을 실천으로 보여주셨던 아버지의 모습을 이어받습니다.
피로 이어받았고 행함으로 보여주셨음을 새기게 되었습니다.
내 아버지는 자상하고 꼼꼼하며 세심한 A형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