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머리카락이 닮은 부녀(父女)

아버지

by 주니퍼진

"진아. 너 머리에 반짝반짝하는 거 그거 머고? 뭐 묻었나?"


50여 차례가 넘는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뼈전이로 인한 통증완화를 위해 일주일간 입원하여 방사선치료를 하기로 결정하고 입원하던 날이었습니다.

짐을 옮기고 창가 자리의 아버지 병상을 봐드리던 중 아버지가 제 머리를 유심히 보십니다.

"진아, 머리에서 뭐가 그리 반짝반짝 하노? 보자. 머꼬?"

"아빠. 이거 희머리칼인데. 내 흰머리가 햇빛에 그렇게 반짝반짝했나 보다."

"아이고야. 그게 다 흰머리가? 당장 가가 염색해라. 아빠가 돈 줄게. 여보 내 지갑 줘봐."

"아빠, 괜찮아. 아빠도 엄마도 백발인데 나라고 검정이겠어요?"

"머리 염색하고 파마도 하고 오너라. 머리 하러 가라"


국민학교 시절 유독 흰머리칼이 많았던 아버지.

그러나 난 단 한 번도 아버지 머리카락이 부끄럽다거나 안쓰럽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흰 머리카락은 아버지의 상징이자 다른 아버지들보다 훨씬 어른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버지의 흰 머리카락은 아버지의 젊음을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당신이 사랑하는 일과 바꾼 결과물이었기에

나는 흰머리카락이 늘어나는 아버지를 더욱 존경했습니다.

아버지가 제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걷기로 한 날도 사람들은 아버지더러 머리카락 염색을 하라고 권했지만

저는 아버의 새하얀 머리카락 있는 그대로가 좋다고 말렸습니다.

삶을 잘 이겨내고 견딘 사람 같은 든든함이 느껴졌기 때문에 저는 아버지의 흰 머리카락이 자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제 손을 잡고 걸으셨지요.


그리고 그런 아버지는 수차례의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30대의 덥수룩한 아버지의 머리카락은 50대가 되어 흰머리카락만이 가득하게 되었고

70대가 된 아버지는 병과 함께 머리카락이 숭숭 빠지더니 민둥머리가 되었습니다.

머리카락 하나 없이 털모자를 쓰고 계셨던 아버지는 제게 그러십니다.


"진아, 염색하고 오너라. 파마도 해라."하고 말입니다.


병상 옆에서 아빠를 챙기시던 엄마가 그러십니다.

"내 머리 하얀 건 괜찮고? 딸머리가 그렇게 신경 쓰여요? 당신도 참~"

부모님은 그런가 봅니다. 마흔 후반이 되어가는 딸을 보면서 당신들의 치열했던 마흔 후반은 생각지 못한 채

그저 팔딱 대던 자식이 늙어가는 것이 애처롭나 봅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염색도 하고 파마도 하여 냄새 폴폴 풍기며 아버지 병원에 들렀습니다.

"아빠! 나 어때? 나 머리 했어요. 괜찮은 것 같아요?"

"이쁘다. 훨씬 낫다. 하얗게 두지 마라"


아빠가 돌아가시고 벌써 두 번째 염색을 했습니다. 흰 머리카락이 마구 솟아있던 어느 날 거울을 보다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하얗게 두지 마라." 하시던 아버지.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자식의 흰 머리칼이 안쓰러워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가는데도 앓는 소리 한 번 안 하신 아버지는

딸의 흰 머리칼을 보고는 "아이고" 하고 한숨을 내쉽니다.


아버지는 내 흰머리카락까지 걱정해 주는 진짜 내 편이었습니다.

항암을 중단하고 아버지의 민둥머리에 하얗게 새 머리카락이 1센티정도 자랐습니다.

하얗게 자란 아버지의 머리카락이 아기 밤송이처럼 매끄럽습니다.

"아빠. 머리카락이 있으니까 확실히 잘 생겼다~ 그것도 하얗게 있으니까 더 멋지구먼~

아빠. 우리 기념사진 찍읍시다. 엄마도 같이요. 김치~"


세월이 묻어납니다. 비껴가지 못한 세월이 야속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사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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