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호스피스 병동으로의 입원 날 집을 나서는 아버지는 다시 돌아올 거라 생각하셨을까?
"진아. 아빠가 호스피스 입원하겠다 하시네."
엄마가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언젠가는 아빠를 호스피스에 모셔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가 당신의 의사를 표현할 때까지 보호자인 우리 입에서 호스피스라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직접 어머니께 "가자. 입원하자" 하셨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거동이 불편해지는 아버지는 침대에 눕는 것도 다시 일어나는 것도 혼자 할 수 없었습니다.
집안 곳곳에 동생이 안전손잡이를 설치했지만 손아귀 자체에 힘이 없었기에 그 안전바를 잡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고 발 감각 상실로 걸음이 점점 엉성해졌습니다.
어느 것 하나 엄마 손을 거치지 않고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약 일주일 제 몸이 좋지 않아 내내 힘들었던 내가 출근길에 아버지께 인사하러 들렀습니다.
아버지는 침대에서 근근이 몸을 세워 힘없이 걸터앉아 계셨습니다.
"아빠. 우리 아빠 오늘 많이 힘들어 보이네." 눈물이 차 올랐습니다.
"아빠. 나 다녀올게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빠. 나 한 번만 안아주세요. 아빠. 나 좀 꼭 안아줘요" 용기 내어 드린 나의 청이었습니다.
무릎 꿇고 앉은 나를 아빠는 꼭 안아주셨습니다. 내게 기대는 아빠에게 나도 같이 기대었습니다.
"진아. 아프지 마라. 건강 잘 챙겨야지. 아푸지마라." 하십니다.
"아빠. 내가 아픈 건 걱정도 하지 마요. 아빠는 지금 누굴 걱정하고 그래. 나 괜찮아."
호스피스병동 입원 후 아버지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집에서는 어떻게든 걸어야만 했던 아버지는 휠체어에 의존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절대 용변만은 화장실을 이용하셨습니다. 하지만 변이를 느끼는 순간 이미 실수를 계속하셨고 이때마다 엄마는 기골이 장대한 아버지의 옷을 혼자 갈아입히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병동의 간호사님들도 많이 도와주셨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옷을 갈아입히고 나면 엄마는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젖어 있어야 했습니다.
"여보. 편해요? 내가 당신 맘에 쏙 들게 잘하지?" 엄마는 아빠가 미안해할까 부러 웃으며 물으십니다.
"당신은 뭐든 잘해. 당신은 나랑 살기 아까운 사람이야." 아빠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이고~당신이 웬일로 내 칭찬을~?" 엄마는 애써 웃으십니다.
엄마의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기저귀를 하겠다고 하십니다. 아버지의 이 말을 들은 엄마는 고마우면서도 너무 슬퍼 한참을 울었다 했습니다.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아버지의 자존심이란 걸 알기에 엄마는 어떻게든 지켜드리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호스피스병동 입원 후 43일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버지를 만나러 갔습니다.
단 한 시간이라도 아버지를 뵈러 갔습니다.
나를 맞이하며 "바쁜데 오지 마라"며 손사래 치던 아버지,
돌아서는 내게 손 흔들어주며 "조심히 다녀"하던 아버지,
내가 조금 늦자 "오늘은 효진이 안 오나"며 나를 찾는 아버지,
내가 갔지만 앉아 계시지 못하는 아버지,
내가 가도 나를 알아채지 못하는 아버지,
내게 손 흔들어 주며 "조심히 다녀라"하고 얘기해 주는 아버지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눈을 뜨지 못하는 아버지를 마주했습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면 하얀 면보자기에 얼굴만 내놓고 꽁꽁 싸 놓듯이
아버지가 하얀 면패드에 얼굴만 내놓고 단정히 꽁꽁 싸여 있습니다.
2025년 4월 14일 월요일. 오후 4시 22분.
밖은 봄꽃들이 만개하는 중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누워계신 창 옆 산에 색색이 꽃들이 피어 봄소풍 준비를 하는 듯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화사한 어느 날 봄소풍을 떠나셨습니다.
일평생 한 번도 마음 편히 나들이 다니지 못한 너무나 고된 아버지는 그 무거운 책임감을 놓고 봄날 속으로
내달렸습니다.
"진아. 당당히 살아라."
"진아. 머리 하얗게 두지 마라."
"진아. 아프지 마라."
보고싶은 우리아빠...
아빠가 못 다 채운 시간을 살아가요.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그 모습을 기리며 나도 그런 부모가 되고자 노력하며 살아가요. 열심을 낼 때마다 "잘했다."하고 묵묵한 칭찬을 할 아빠를 생각하며 아빠를 영원히 기억하려 해요. 아빠가 삶으로 보여준 모든 모습이 결국 내 삶의 밑천이예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