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늦은 밤. 계속해서 걸려오는 전화.
아버지의 사업이 휘청이기 시작하면서
늦은 밤에도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 소리로
간혹 전화 수화기를 뽑아 놓고 한 밤을 보내야 하는 날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날은 점점 많아져
밤이면 수화기를 뽑아야 하는 일이 습관처럼 되어버렸답니다.
그날도 늦은 밤 수화기를 뽑으려 전화기 앞으로 다가간 엄마가
연속하여 울리는 전화를 받지 않을 수가 없어 결국 받았습니다.
엄마가 특별한 대꾸 없이 응대합니다. “네, 네, 네”
빚쟁이들의 전화를 대할 때와 사뭇 다릅니다.
늦은 밤의 엄마는 그 전화 통화 후 고요합니다.
등교를 위해 잠자리에 들라고 엄마는 우리에게 권하십니다.
심상치 않은 엄마의 목소리에 단번에 “네” 하고 대답하고 잠자리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엄마가 말씀하십니다.
엄마가 일이 있어 하교 때 집에 없을 수 있으니 당황 말라하십니다.
윗집에 열쇠를 맡겨둘 테니 하교 후 집에서 숙제하고 있으라 했습니다.
웬일로 아빠가 아침등교를 봐주십니다.
얼떨떨한 걸음과 동시에 아빠의 등교배웅이 좋았던 우리는 웃으며 신나게 등굣길을 즐깁니다.
아침의 엄마 말처럼 하교 후 엄마가 안 계신 빈집으로 직접 열쇠로 열고 들어갑니다.
철없던 그때를 떠 올리자면 집키를 목에 걸고 직접 문 열고 들어가던 아이들을 부러워한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문 열고 들어간 집에 “잘 다녀왔어?”하고 반겨주는 사람이 없으니
즐거운 하굣길은 아니었습니다.
엄마만 없고 다른 건 다 있는데 왜 다 비어버린 것 같은 기분일까요?
텅 빈집 같은 그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밤이 되자 엄마와 아빠가 같이 오십니다. 아무래도 간밤의 전화가 이유가 된 듯합니다.
부모님의 부르심에 중2인 나와 중1인 동생이 앞에 앉습니다.
“어젯밤 전화는 병원에서 온 거야. 급한 일이라 밤늦게 전화했데. 엄마가 이틀뒤에 입원해서 수술을 해야 해. 효진이가 창현이를 좀 챙겨야 해. 엄마가 해야 할 일들을 적어둘게.”
담담히 말하는 엄마와 달리 아빠의 얼굴이, 그 까맣던 아빠의 얼굴이 하얗게 변해있습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그때 대학병원에서 보호자 동반하에 엄마의 병명을 듣고
엄마는 올 것이 왔구나 차라리 담담했다 했습니다.
그러나 옆에 앉은 아빠의 얼굴이 노랗다 못해 하얗게 변해버렸다고 합니다.
엄마는 옆에 앉은 아빠의 한 손에 엄마의 손을 포개어 잡았다고 했습니다.
우리 집을 가득 메워 지키고 있었던 엄마는 그렇게 큰 사람이었고
자신의 신체가 상하고 있음에도 아빠 손을 잡고 다독였다 했습니다.
엄마가 우리를 앉혀놓고 이야기하는 그 밤.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그저 엄마 옆에서 거실 바닥만 보고 계십니다.
아버지의 무언은 엄마에 대한 자책과 당신의 무능함을 스스로 삼키고 삼키는 듯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엄마는 병원 가방을 싸고 집안 정리를 시작합니다.
엄마가 안 계신 집안은 상상도 하기 싫다 여긴 지 하루 만에
나는 엄마가 안 계신 집을 지켜야 하는 코리아 장녀로 거듭나야 했습니다.
하얗게 변해버린 아버지의 얼굴은
다음날 두 손 가득 들고 온 볶은 현미와 각종 야채들로 시선을 돌리게 했습니다.
당시 잡지에 유방암에 좋다는 현미물과 야채물을 만들기 위해 아버지가 준비해 온 것들입니다.
엄마가 병원 짐 가방을 싸고 집을 비울 준비를 하는 동안 아버지는 엄마 옆을 지킬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나는 동생과 함께 이 빈 집을 지킬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이 하얘져버린 그날.
엄마는 이 남자를 살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며
엄마의 그 각오에 어쩔 수 없이 “딸”에게 당분간 당신의 빈자리를 대신해 주길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입원하던 날 아침.
엄마는 딸과 아들에게 특별히 더 아침 식사를 챙겼고
가방 멘 우리를 불러 세워 꼭 안아주시고 웃는 얼굴로 등교시켰습니다.
이것이 엄마의 두 가슴속에 파묻혀 안기게 된 마지막 포옹이란 걸 그땐 미처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