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
1994년. 여름.
학교 방송실 티브이에서 김일성이 죽었다는 뉴스가 계속 나왔다.
"김일성이 죽었데."
"김일성이 죽었다고? 진짜?"
"우리나라 전쟁 나는 거 아니야?"
'전. 쟁'
내 머릿속은 이미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이라는 이 두 글자가 나를 삼켰고 그때부터 불안과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 불안과 공포라 함은 전쟁으로 나라가 엉망이 되어 내가 살아가는 것이 궁핍해지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다치는 그런 공포가 아니라 오직 떨어져 있는 동생 걱정이었다.
당시에도 어디서 듣고 본 것은 있어서는 '학도병'이라는 말이 생각났고 그럼 중학교 1학년인 내 동생은 끌려갈 것인데 엄마는 지금 치료 중이라 아빠랑 같이 계시고 또 어른이니 괜찮을 거야.
나야 어떻게든 살아가겠는데 내 동생. 이 자식을 어찌해야 하지. 전교에서 제일 작고 형들이 돈 뺏으려고 잡았다가도 귀엽다고 놓아주었다는 이 놈을 내가 어떻게 내 옆에 데려다 놓지. 정말 미치겠다.
그때부터 안절부절못함을 감추질 못했고 쉬는 시간이 끝나고 모두 교실로 돌아가 수업을 들어야 함에도 재차 선생님께 전쟁이 정말 나냐며 확인했다. 나의 변화된 환경을 너무 잘 아시던 담임 선생님은 내게 허리 숙여 눈 마주치고 말씀해 주셨다. 절대 그럴 리 없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불안해하지 말라고.
그때 선생님이 그렇게 나와 눈 맞추고 확신에 찬 부드럽고도 강한 음성과 눈빛을 주지 않으셨다면 난 조퇴를 하고 동생이 재학하던 학교로 쫓아갔을 것이다. 정신병자처럼.
선생님의 말씀에 한 시름 놓고 하교 때 동생과 만나는 길목에서 기다렸다. 동생이 쫄래쫄래 온다.
중학교 일 학년의 까까머리 동생이 까만 안경을 끼고 저기서 "누나!"하고 부르더니 서둘러 뛰는 것도 없이 느직이 온다. '너 내가 오늘 너 때문에 얼마나 심장이 아팠는 줄 아냐.'라고 한 대 때리고 싶을 만큼 무념무상이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누나, 오늘 김일성이 죽었데. 그 북한사람."
'그래. 그 북한사람 김일성이 죽는 바람에 이 누나가 죽을 뻔했다.' 생각하며 봤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갖기도 참 무색하지만 그래도 난 너무 다행이었다.
시간이 지나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불안과 초조를 넘어 공포를 느꼈을까? 생각했다.
왜 이렇게 그때의 두근거림이 생생할까. 왜 그렇게 동생에게 집착했을까?
돌이켜보니 그랬던 것 같다. 동생과 나는 불안한 상황에서 늘 둘이 함께 있었다.
나는 책임을 가장하여 동생을 옆에 두고 오히려 동생으로 인해 안정감을 얻었던 것 같다. 내편이라는..
함께했던 동생은 내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보다 내가 더 의지하던 대상이었던것 같다.
뚱뚱보차장이 된 동생은 아직도 "누나" 하고 부르며 전화한다.
"누나"하고 부르던 어린시절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