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새해가 되었다.
진짜 무수한 새로운 경험들을 할 2026년이 되었다.
엄마는 지난해 아버지와 함께 맞이했던 집에서 홀로 새해를 맞이해야 했다.
엄마 혼자 새해맞이하는 것이 너무 마음에 걸려 엄마를 송구영신예배에 초청했다.
교회에 같이 가자는 말도 듣기 싫어하는 엄마이지만 엄마 역시도 혼자 보신각 종 치며
새해를 알리는 중계방송을 볼 자신이 없었는지 군소리 없이 초청에 응했다.
캄캄한 밤 11시 30분의 외출. 엄마에게는 아주 낯선 일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일이었고 사뭇 신기해하면서도
재미있어하는 듯했다. 게다가 딸과 손녀가 함께 하니 모녀 삼대의 기운이 좋았던 듯하다.
함께 한 해를 돌이키는 영상을 보며 눈물짓기도, 흐뭇해하기도 하며 카운트다운을 기다렸다.
2026년 1월 1일 00시가 되자마자 새해 첫 예배를 드렸다. 엄마에게는 지겨울 수도 있었지만 나는 엄마가 쓸쓸히 집에 있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섞여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새해는 정말 새로운 경험으로 시작된 것이다.
송구영신 예배 후 01시 30분의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엄마와 나, 그리고 내 딸이 함께 횡단보도를 건넜다.
엄마는 횡단보도를 건너며 "내가 이 동네 30년을 살았는데 이 시간에 이 횡단보도는 처음 건넌다."라고 했다.
"엄마, 새로운 경험 하니까 좋지? 엄마. 주머니에서 손 빼고 걸어야지. 그러다 넘어지면 큰일 나."
"딸아, 너는 자꾸 걸음을 그렇게 팔자로 걸을 거야?"
턱이 덜덜덜 떨리는 밤기온이었지만 엄마와 딸이 함께 걷는 길이 좋아 괜히 시끄러이 잔소리해 댔다.
아니나 다를까 딸과 엄마는 똑같이 한 소리씩 했다.
"엄마 닮아 팔자로 걷는 거거든." 딸이 말하자 "내가 너한테 잔소리 들어야겠냐." 엄마가 또 한 소리한다.
그렇게 같은 빌라 2층 4층에 사는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갔다.
마음이 불편하여 2층 엄마 집에 잠시 들렀다. 엄마가 주섬주섬 옷 갈아입는 것도 다 지켜봤다.
짐도 많고 식물도 많은 엄마 집이지만 아빠가 안 계신 집은 유독 휑하다.
새벽 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엄마는 자꾸 나더러 뭘 좀 먹고 가라 한다.
엄마는 나를 붙들고 싶었던 듯하다.
엄마 마음은 십분 이해한다.
차마 자고 가라는 말을 못 하고 머뭇대는 엄마의 눈길을 나는 일부러 피했다.
그리고 나는 엄마를 한 번 안아주었다. "엄마! 잘 자. 푹 자. 늦게 자니까 늦잠자도 돼. 알겠지? 나 아침에 떡국 먹으러 내려올게" 나는 일부러 아무 일 아닌 척 엄마에게 씩씩하게 말했다.
엄마 역시 내 눈을 마주치지 않고 "그래. 올라가라. 아침에 오너라." 하고 말했다.
엄마도 나도 다 안다. 겪어야 한다는 걸. 이겨내야 한다는 걸.
현관문이 닫히면 돌아서는 순간 각자가 눈물짓는다는 걸.
엄마의 새 해는 모든 걸 새롭게 경험하고 맞이하는 진짜 새로운 해가 되어가고 있다.
4층 집으로 올라오니 먼저 올라간 딸이 묻는다.
"늦게 올라왔네. 할머니는 어때? 엄마 마음 불편하지? "
순간 내 마음을 알아채는 딸의 이 한마디가 고마웠다.
그리고 내가 딸에게 위로받듯이 엄마는 내게 위로받고 있을까? 생각했다.
엄마를 홀로 둔 죄책감이 밀려왔다.
급하게 아빠를 찾았다.
'아빠. 오늘은 엄마 꿈에 꼭 좀 나와줘요. 제발. 엄마가 보고 싶어 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