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갖은 독촉전화에 하루 종일 시달리다 동생의 이름이 뜨는 전화창을 보며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됐다.
동생에게 괜히 약한 모습 보이게 될까 봐 전화받기를 말았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서 걸려온 전화들로 귀도 먹먹하고 마음도 갈기갈기 상처 난 상태다.
가만히 있자니 더 우울하다. 아이들을 위해 힘을 내기로 한다.
그리고 다시금 동생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동생이 얼마나 걱정하고 있을지 알기 때문에.
전화를 받았다. 애써 웃었다. 애써 목소리 톤도 높였다.
"누나. 괜찮나. 이사 준비는 하고 있나. 걱정 마라. 누나. 부모님도 계시고 나도 있잖아.
누나. 애들 데리고 오면 내가 더 많이 도울 수 있다. 누나. 다 잘 될 거다. 어?"
동생이 괜찮냐고 묻는 순간부터 눈물은 계속 흐르고 있다. 아이들이 조용히 내 옆에 앉았다.
고작 3학년 1학년의 아이들이 집안 분위기를 파악했다.
그렇게 우리는 친정 곁으로 내려왔다.
이사하는 날 친정식구들 모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과 도착한 어수선한 낯선 동네.
괜찮은 척했다. 잘 버티고 견뎌갈 거라 다짐했다.
동생이 조용히 봉투를 내민다. 보태 쓰라는 돈과 짧은 편지가 있었다.
'누나. 누나 옆에는 부모님 하고 내가 있다. 기죽지 말고 언제든 말해라.
누나가 나 챙겨준 거에 비하면 너무 모자란다. 누나. 더 좋은 날 맞이할 거다.
아프지 말고'
말주변 없는 동생이 내민 짧은 편지와 현금에 만감이 들었다.
동생은 그날만큼은 오빠처럼 든든함으로 내 편이 되어 텅 비고 생채기 난 내 마음을 채워 주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견디며 몇 년을 보냈다.
작은 수술을 하고 퇴원해서 집에 있는 어느 날 동생이 찾아왔다.
문 열고 들어서자마자 "누나. 얼굴이 왜 이렇노. 살이 왜 이렇게 빠졌는데. 아휴."
수술하고 퇴원을 해도 엄마의 역할을 누가 대신 해 주지 않기에 느리지만 하나씩 해 내고 있었다.
그러던 차 동생이 왔다. 코로나 급증 때 수술을 하는 바람에 병원에는 아무도 병문안을 올 수가 없는 때였다.
매번 누나는 튼튼하다고 놀려대던 동생이 수술 후 내 안색을 보고 좀 놀랐나 보다.
뭐 좀 챙겨 먹고 있냐고 묻는다. 몸도 안 좋은데 애들 챙기는 거 대충 해도 된다고 나무란다.
그땐 왜 그랬는지 괜히 책잡히기 싫어 더 유난을 부렸던 것 같다. 유난은 스트레스를 불렀고 스트레스가 병의 근원이 된 것이다.
동생은 집을 나서며 아이들에게 "엄마 아프니까 엄마 말 잘 들어."라고 당부했다.
핏줄이란 이런 건가 보다. 고마웠다. 유난스럽지 않은 동생은 무심한 듯 잔잔하게 내 편이 되어주었다.
어렸을 적 말 잘 듣던 동생은 중학교 때 잠시 까불다가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끈끈함은 없어도 동생과 나는 이렇게 무심한 잔정으로 툭툭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지낸다.
부디 건강히 오랫동안 내 편이 되어 있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