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 시온이
2016년. 3월.
이미 몇 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터였다.
살림을 유지하기가 힘들어 이사를 했고 집에 맞지 않는 세간도 모두 정리하였다.
단 아이들의 책상과 침대만은 절대 정리하지 않겠다는 철칙을 두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하고 있었던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경단녀였던 나는 방문학습지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늦은 밤 귀가로 인해 지방에 있는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매일 붙어 다니며 아이들과 나불나불 이야기하고 어린 시간의 기억이 살아가는 시간의 좋은 추억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최대한 오래 버텼지만 주머니사정이 뻔해지니 되려 아이들에게 짜증 내는 엄마 답지 못함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고 전전긍긍할 만도 했지만 다행히 친정 엄마의 도움으로 일에 매진할 수 있었고 빠르게 적응했다.
하지만 남의 집 아이들을 타이르고 칭찬, 격려하며 발전시키려 애쓰는 동안 내 아이들은 아침에 등교하는 것과 퇴근하면 할머니 옆에서 잠들어 있는 모습만 보는 날이 많아졌다.
아이들과 소통할 방법이라곤 알림장과 현관 앞에 둔 큰 초록 칠판뿐이었다.
아이들의 알림장에 자주 이런저런 메모를 썼던 나는 아이들의 알림장을 좀 더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가서 하루 일과가 끝나고 알림장을 폈을 때 엄마의 칭찬과 사랑한다는 말이 아이들의 하굣길에 가슴에 첫마디로 기억되길 바랐다.
관찰력과 주변 분위기 파악을 잘하는 아들은 탁월한 언변으로 아이들 사이에서의 일이나 선생님께 전달해야 할 일들을 똑 부러지고 야무지게 해 냈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다른 엄마들이 당신 아들의 학교생활을 부탁할 정도였다.
아들은 집 안 분위기도 빠르게 파악했다. 오히려 내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이야기해야 할 정도로.
엄마가 퇴근하면 놓치지 않고 확인할 수 있게 알림장은 항상 식탁 위에 두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은 자신의 것을 먼저 봐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는지 늘 반듯하게 펼쳐 식탁위에 알림장을 두었다.
잠들어 있는 아들을 본 후 차근히 내용을 확인하고 짧은 메모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2016년 3월의 메모에 나는 살아갈 힘을 또 얻었다.
'시온아. 오늘은 예승이랑 피아노 갔다가 시온이는 영어 수업하고 예승이는 할머니랑 집으로 오면 돼.
우리 시온이가 하고 싶은 게 많지만 참고 있다는 거 알아. 고마워 아들...'
그리고 아들은 내게 이렇게 답장했다.
'엄마 두잖아요. 엄마도 참고 있잖아요.'
큼직하고 반듯한 글씨고 꾹꾹 눌러 쓴 아들의 마음을 받았다.
나는 이렇게 영글어버린 아들의 마음에 그저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밖에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힘겨움이 닥쳤고 무엇으로 웃을 일이 있을까, 힘 날 일이 있을까 했을 때
나는 또 가족으로 인해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것이 이번에는 나의 자녀였다.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을 내가 온전히 내려주기도 전에 나는 자식으로부터 또 다른 사랑을 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