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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June May 27. 2023

비행기

    6시간 더하기 3 시간. 두 편의 비행기. 베를린과 볼티모어 사이에는 어쩌면 멀지도 어쩌면 가까울 지도 모르는 비행거리가 있었다. 얼마나 고단할 비행인지 우리는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함께 나는 볼티모어 공항에서 베를린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시간은 오후 5시, 비행기는 오후 7시에 이륙하기로 되어 있었다.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아있었지만, 무엇을 하면 좋을 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 우리, 음료수 한잔 할까? 


    내 제안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어쩐지 조금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는 비행기 표를 여권 중간에 끼워넣고 배낭을 잡아 매었다. 나도 내 여권을 손에 꼭 잡고 가방을 한 어깨에 짊어졌다. 우리의 여권에는 금빛의 독수리 문양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난 한국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은 이십여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내가 수능을 보기 일년 전, 남동생이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한달이 채 되지 않았던 겨울 날, 우리는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 메릴랜드 주에 정착했다. 엄마와 아버지가 이제 막 마흔 중반으로 접어든 해였다.


    그 뒤 많은 일이 있었다. 이민자들이라면 다 겪는 끔찍한 외로움과 불안의 시간이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 사는 곳은 거즘 다 비슷하다는 것을 이십년의 시간동안 들여 꼼꼼히 배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가족은 그야말로 평균 이하도 이상도 아닌, 딱 보통의 한국계 미국인 가족으로 정착했다. 우리가 미국으로 건너왔을 때, 미국은 한국인 이민자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미지의 땅은 아니었다. 막 2000 년도 초반이던 그 때, '미드' 프렌즈와 CSI가 유행했고,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긴 머리칼을 흘리며 춤을 추는 모습이 브로마이드로 찍혀 나와 여중생 방에 걸렸다. 지금와서 생각컨데, 한국 국민들에게 영어라는 언어와 그 언어가 전하는 영미권의 문화는 어느 정도 익숙한 것이었던 것 같다. 다만 우리가 미국에 도착한 이후 필요했던 것은 많은 시간이었다. 

    

    한참 외롭고 어려울 때면, 여러 가지 생각과 기억들이 우리를 지탱해 주고 용기를 주었는데, 그 중에 내가 아버지에게 가끔 물어보는 것이 있었다. '할머니라면 어떻게 했을까'.    


 -   할머니라면 어떻게 했을까. 


    할머니는 파독 간호사였다. 모두 가난했던 60년대, 우리 할머니, 그러니까 아버지의 어머니는 한국에서 독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파독 간호사 3기였던 봉병해 여사. 갓 서른 다섯을 넘긴 나이에 열 살, 여덟 살, 그리고 여섯 살 난 아이들과 남편을 한국에 두고 봉병해 여사는 겁도 없이 정말 낯선 나라로 갔다. 우리 아버지가 그녀의 열 살백이 맏이였다. 할버니는 부지런히 마르크를 벌어서 본인을 위한 쥐꼬리만 남겨두고 전부 한국으로 부쳤다고 했다. 그리고 딱 십년을 독일에서 머문 뒤, 그녀는 한국으로 되돌아갔다. 


    처음 이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녀가 무모했다고 생각한 동시에 무언가 대단히 용감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녀의 이야기는 타국에서 이상하리만치 나에게 용기를 주었고, 나는 미국에서의 이민 생활을 하며 간간히 그녀를 생각했다. 나에게는 그녀가 딱 그 정도의 용기였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그녀는, 아버지가 엄마를 가장  필요로 하던 때 아버지가 멀리서 그리워 하던, 용기 이상의 그리움이었다. 그 그리움은 아버지의 삶, 그러니까 그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곳곳에 영향을 미쳤다. 그녀의 부재는 아버지의 성향에 많은 영향을 끼친 듯 했다. 그리서 나는, 언젠가 어느정도 삶에 여유가 생기면, 아버지와 함께 할머니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베를린에 가고 싶었다. 가서, 나의 용기의 대상이자 아버지의 크디 큰 그리움이었던 할머니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 여행의 기회가 하필, 애가 서른 다섯인 올해, 마치 서른 다섯의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홀연히 주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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