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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June May 29. 2023

커피잔

    아버지가 열 살 즈음, 할머니가 서른 다섯일 즈음, 할아버지는 바람을 피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성공적이지 않은 사업가였다. 나의 기억 속 할아버지는 안 별여본 사업이 없었다. 내가 어린 시절 한 때 할아버지는 신림동 한 구석에 원미상사라는 작은 미싱 공장을 차리고 나비 모양의 패치나 오색 영롱한 구슬을 다양한 옷에 박는 사업을 했다. 미싱공장은 본인 댁에서 한 오분 떨어져있었는데, 아침마다 할아버지는 회의를 한답시고 직원 대여섯 명과 당시 서른 서너세였던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를 안방에 불러 앉혀놓고 커피를 홀짝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아버지는 현대기업을 다니던 유망한 젊은이였지만, 조직생활을 힘들어 한 본인의 성격과 할아버지를 도와야 한다는 자식의 도리로 인해 할아버지 밑에서 일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침 때마다 할머니는 이 회의를 을 위해 물을 끓이고 커피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커피를 독일에서 가져왔다는 갈색빛이 영롱한 유리 잔에 부어 날랐다. 커피를 짓다 심심할 적에는 우리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할머니가 왜 독일까지 건너갔었는지 한조각 한조각 듣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하나의 이야기로 그 조각들을 꿰어 맞출 수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연애 결혼을 했다. 할머니가 나고 자란 집안은 1950년대 당시 전라도에서라면 알아주던 명문가였더랬다. 할머니 형제자매들, 즉 봉가네 젊은이들은 바깥 세상 소식에 밝아 연애를 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여겼던 모양이다. 시대는 혼란 스러웠고 낮에는 국군들이, 밤에는 공산군들이 마을 사람들을 힘들게 했지만, 십대였던 할머니는 그저 꿈많던 소녀였고 자유분방했던 말괄량이었다. 여고생이던 그녀는 농업 지도사였던 젊은 할아버지를 보고 한눈에 반해 버렸다고 한다. 장이 서던 날에 교복 복장의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로 달려오면, 할아버지는 "우리 도람통 - 드럼통같이 통통했던 할머니를 보고 - 왔는가" 하고 장난스럽에 말하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할머니를 살짝 안아주었는데, 그때면 그의 담배 냄새가 구수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할때면 할머니는 영락없이 소녀 적의 얼굴을 하고 좋아했다.


    할머니 집안 어른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그들은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슬하에 삼남매를 두었다. 우리 아버지, 작은 아버지, 그리고 고모였다. 행복하기만 한 나날들이 이었졌다. 고졸이었던 할머니와 대졸이었던 할아버지는 당시 꽤 파워커플이었던 모양이다. 할아버지가 농촌 지도사를 그만두고 하나 둘씩 사업 구상을 할 때, 할머니는 몇년의 교사 생활과 몇년의 공중 보건소 근무를 했다. 전쟁 후 가난했던 지역 사회를 '돕고자' 할머니는 가정계획사가 되어 피임기구를 가방째 짊어지고 "아들 딸 구별 말고 셋만 낳아 잘 기르자"를 전파하고 다녔다. 그 구호가 "둘만 낳아", 그리고 "하나만 낳아"로 바뀌며, 할머니는 삼십대로 훌쩍 들어섰다.


    그리고, 여인이 가장 아름답다는 삼십대 초반, 우리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사업차 간 출장에서 다른 여인을 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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