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현실 세계의 단조로운 일상에 지칠 때쯤, 다양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도파민이 뇌에서 온 몸으로 퍼지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입꼬리가 씰룩거리고, 감정이 풍부해지면서 드라마에 온 정신을 집중하게된다.
최근엔 넷플릭스나 왓챠 플레이 같은 VOD 스트리밍 서비스에 가입하면서 미드나 중드 정주행으로 주말이면 폐인이 되곤 했다. 그렇게 드라마 중독이 심해져갈 때쯤이면 탈퇴를 결심하지만, 이내 한 달 결제를 누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K는 드라마 중에서도 SF 장르를 좋아했다. 현실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특히 좋아했다. 그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영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신기했기때문이다.
이번 주말에 정주행한 미드 '로스트 룸'을 보는 내내 K는 작가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냈다.
1961년, 한 모텔에서 발생한 어떤 사건으로 인해 모텔방에 있던 시계나 열쇠 같은 평범한 오브젝트들이 모텔방을 벗어나면서 신기한 힘을 지니게 된다. 그 힘을 아는 자들은 오브젝트 콜렉터가 되거나, 모든 오브젝트를 모으면 신과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 교단에 소속되었다. 특히나 최상위 오브젝트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는 기막힌 반전에서 K는 자신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도대체 저런 생각들은 어떻게 하는 걸까?
SF 물을 보고 나면 자기 전에 꼭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저런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걸까? 창조는 기존의 것을 모방하면서 그것에 살을 덧대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K는 의아했다.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조앤 롤링이 쓴 해리포터는 분명 새로운 그 무엇이었다. 그녀는 암울한 그녀의 과거 속에서 어떻게 이런 상상력을 발휘했을까? K는 그것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K는 영재 발굴단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림 영재 '강범진'군을 기억한다. 그 아이는 우주와 관련된 기이한 그림을 몇 시간이고 몰입해서 그렸다. 오래된 이야기인데도 K가 기억하는 이유는 강범진 군이 그림을 그릴 때 머릿속에 켜지는 TV 때문이었다. 강범진 군은 머릿속 TV가 켜지면서 보이는 우주 이미지들을 도화지에 옮겨 그린다고 한다. 그림은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고 그 세밀화 하나하나에 스토리가 담겨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강범진군의 그림을 보면서 K는 마야의 상형문자를 떠올렸다. 그림체가 마야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강범진군의 그림과 마야는 어떤 연결성이 있는 것일까?
<마야의 상형문자>
K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상상력의 원천이 생전에 어디서 들었거나 본 것이 아니라면,
어쩌면 인간의 진화 어느 단계에서 겪었던 기억이 유전되어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는 건 아닐까 하고.
혹은 진화 단계에서 기인한 게 아닌 지구 차원의 것이 아니라면... K는 갑자기 전율을 느꼈다.
다중우주에 근거한 평행 이론이 떠올랐던 것이다. 수없이 많은 다른 우주들이 존재한다는 평행이론.
다중우주가 지구에 존재하는 우리 몸과 물질들을 반복해서 만들어내고, 다른 시공간에서 지구와는 다른 경험들을 동시에 하고 있다면, 같은 몸을 지닌 존재들 간에 텔레파시로 연결되는 지점이 바로 상상력이 아닐까 하고.
여기까지 생각을 하고 나면 K는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해지곤 하지만, 어차피 얘기해봤자 엉뚱한 사람으로 몰리기 십상이라 이내 생각을 멈추곤 한다. 하지만 글쓰기를 좋아하는 K로선 강범진군의 상상력이 부러워지곤 하는 것이다. 저런 상상력만 있다면 무한한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
K는 만일 다중우주가 존재한다면 그 어딘가에서 숨을 쉬고 존재하는 또 다른 자신에게 텔레파시를 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어쩌면 자신의 상상력이 터지는 순간이 바로 그 텔레파시에 대한 또 다른 자신의 응답일 거라 믿는 그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