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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이야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The OA>

삶의 시간 속을 거닐다 보면 마치 게임 속 아이템을 줍듯 숨겨진 메시지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누군가의 지나가는 말속에서,

책 속의 어느 페이지에서,

드라마나 영화의 어느 장면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The OA>를 봤을 때 일종의 <계시>처럼 하나의 화두가 내 머릿속에 떠돌았다.


그것은 바로 <문>이다.


그것은 흩어져 있던 메시지들을 연결하힌트였다. 힌트를 따라 연결된 퍼즐의 윤곽이 드러날 때의 전율이란...

드라마 하나를 보고 너무 거창한 거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안개 자욱한 미스터리한 삶의 비밀을 조금은 알아냈다는 성취감은, 비록 그것이 나만의 착각일지라도, 책이든 영화든 삶의 면면에 몰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The OA>는 어떤 내용일까?

(스포일러 포함)



금발의 한 여인이 다리에서 뛰어내린다. 병원으로 실려와 의식을 되찾은 그녀는 스스로를 OA라 칭하며 알 수 없는 소리를 한다. 그녀가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영상을 보고 병원으로 달려온 한 노부부. 그들은 그녀가 7년 동안 행방불명된 딸 <프레이리>라고 말했고 시각장애인이었던 딸이 시력을 되찾았다는 사실에 더욱 놀란다. 딸을 되찾은 기쁨도 잠시, 이상한 행동을 하는 딸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프레이리>는 원래 러시아 거상의 딸 <니나 나자로바>였다.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예지몽을 꾸던 니나는 결국 예지몽대로 버스 사고가 나고 깊은 물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죽음의 순간 찬란한 어둠 속에서 사후세계를 경험하게 되고, 사후세계에서 만난 한 여인이 물속에서 니나를 끌어올려 안아주며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 돌아가겠다는 니나에게 그 여인은 앞으로 일어날 끔찍한 일들을 니나가 보게 할 수는 없다며 니나의 시력을 앗은 채 돌려보낸다.


아빠의 사고 소식과 함께 버려지다시피 한 니나는 이모에게 길러지고 우연히 미국인 부부에게 입양된다. <프레이리>라는 이름으로 미국에서 살게 되지만 예지몽은 끝나지 않았다. 프레이리는 아빠를 찾기 위해 예지몽 속의 자유의 여신상을 찾아 뉴욕으로 떠난다. 그러나 간절히 원하던 아빠는 찾지 못하고 평생의 숙적인 햅 박사를 만나게 된다. 햅의 꼬임에 넘어가 그의 연구소에 갇혀 7년 동안 다른 실험자들과 함께 혹독한 실험을 당하는데... 그 실험은 바로 사후세계를 경험한 이들을 납치해 그들을 끊임없이 죽였다 살려내는 실험이었다. 햅 박사는 이를 통해 사후세계를 증명하려 한다. 그렇게 그녀를 포함한 실험자들은 끊임없이 죽었고, 다시 살아났다.


임상체험 속에서 프레이리는 자신을 부르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자신이 OA라는 걸 알게 된다. OA는 동료들과 함께 의식적인 임상체험을 통해 차원의 문을 여는 <5가지 동작>을 익혀 실험실을 벗어나려 했으나,  박사는 OA만을 버려두고 남은 실험자들과 차원 이동을 한다.


그렇게 홀로 돌아온 OA는 그들을 찾기 위해 5명의 낯선 이들을 불러 모아 밤마다 그녀가 겪은 일을 들려주며 5가지 동작을 가르친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The OA>


넷플릭스 시리즈 <The OA>는 원래 시즌 5까지 제작할 계획이었으나 아쉽게도 2019년 시즌 2를 마지막으로 제작이 종료되었다. 주연배우이자 제작을 맡은 <브릿 말링>은 그녀의 SNS에 이 소식을 전하며 아쉬워했다. 브릿 말링은 SF에 심취해 이 영화의 스크립트도 직접 썼다고 한다. 뭔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묘한 아우라를 지닌 배우 브릿말링과 <The OA>, SF, 넷플릭스는 기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The OA>는 끝났지만, 내게 있어 기묘한 <The OA>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The OA>의 키워드 <연결성>


영화는 실험이고 체험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거대한 실험이다.

<The OA>는 평행세계 간 차원 이동을 포함한 사후세계에 대한 거대한 실험의 장이었다. 그 실험은 영상을 통해 보는 이에게 일상을 다르게 보는 새로운 시선을 갖게 한다.


시즌 2가 끝나고 고개를 들어 오래전에 그린 그림 하나를 바라보았다.

에드워드 호퍼의 <room by the sea>. 벽에 걸만한 명화 액자를 구경하다가 보자마자 <갖고 싶다>란 열망에 사로잡혀 오래된 아크릴 물감을 힘들게 짜며 그린 그림이다.


그림은 1도 모르는 내게 왜 이 그림이 그토록 강렬하게 다가왔을까? 바로 저 문 때문이었다. 열린 문. 

문 너머 푸른 바다가 좋았다. 일상의 공간이 문 하나로 다른 공간과 연결되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문 발코니에 서 있는 나를 상상하면 알 수 없는 해방감에 가슴속 어딘가에 청량한 기운이 돌곤 하는 것이었다.


<The OA> 시즌 2가 끝나고 나도 모르게 그림을 바라보았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햅 박사로부터 버려진 OA가 5명을 모을 때 그들에게 신신당부한 말이 있었다. 자신에게 올 때 집의 문을 반드시 열어놔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즌 1의 마지막에도 OA가 실려가는 엠뷸런스를 따라가며 스티브가 울부짖는다. <열리고 있다>고... 시즌 2에서는 카림이라는 인물이 집이라는 공간 속에서 수많은 문을 거쳐 평행세계의 다른 차원에 이르는 문을 찾아낸다. 그 문이 열렸을 때 물이 흘러나온다. 차원 이동과 연결된 <문>과 연결된 키워드가 바로 <물>이다. <물>은 <The OA>에서 <삶>과 <죽음>을 의미했고 그 둘의 연결성을 의미했다. 그리고 내 방에 걸린 한 그림과 연결되었다.


그렇게 일상의 메시지 조각들이 맞춰졌다. 차원을 드나드는 문은 이미 열려 있다. 우리가 눈이 어두워 찾지 못할 뿐. 시즌 2 마지막에 OA가 이동한 차원은 영화 제작소였다. 그것은 마치 삶은 연극 무대와도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했다. 평행 세계에 공존하는 여러 차원들 속에서 우린 다양한 무대 장치를 배경으로 연기하는 배우임을 의미했다. 차원은 다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어느 차원에서 어떤 역을 맡아 연기를 하더라도 본질은 하나다.


햅 박사처럼 욕망에 사로잡혀 사람을 헤쳐가며 이득을 취하는 이는 차원을 여는 비밀의 열쇠를 손에 쥐더라도 그에게 남는 것은 <폭력>과 <공포>, 그리고 <고독>뿐이다. 하지만 믿음으로 선한 의지를 갖는 자는 차원을 뛰어넘는다. 아마도 <The OA>의 미완결 시즌은 이에 대한 내용이지 않았을까라는 예상을 해본다.





내게 남겨진 화두는 <문> 그리고 <道>


보는 자는 보지 못할 것이며

듣는 자는 듣지 못할 것이며

찾는 자는 찾지 못할 것이다.


노자의 마지막 가르침의 한 조각인 길 <道>은 또다시 <문>과 연결되어 삶의 시간 속에서 또 다른 메시지의 조각들을 찾고 있다. 그 메시지들을 찾는 데 넷플릭스는 또 하나의 연결된 문이다.


<The OA>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그렇게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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