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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 맞선다는 것

<늦깎이 초보운전기>

전 유난히 겁이 많은 사람입니다.


세상의 모든 걱정을 끌어안고 모든 일에 한 발 내딛기가 쉽지 않은 그런 사람이죠. 운전은 그런 저에게 커다란 숙제였습니다. 기계치에 방향치에 몸치인 제가 저 무시무시하고 커다란 기계를 몬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제게 운전을 해야만 한다며 무언의 압박을 가하더군요.


20대 후반에 입사한 회사에서 운전을 못한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잘리고선 삼일 밤낮을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었으면서도 전 면허를 따지 않았습니다. 실직에 대한 억울함과 상처보다 운전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이었어요.


운전면허를 따라는 주변의 설득이 이어지던 30대 중반에 드디어 운전면허를 따야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취업 시 자격 조건에 빠지지 않는 운전면허는 필수라는 생각에서 겁은 났지만 일단 운전면허 학원에 전화를 걸고 학원비를 입금했습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된 거죠.


다행히 필기시험은 무사통과했지만, 저의 최대 고비인 주행 시험이 남아 있었습니다. 사실 운전대만 잡으면 손에서 땀이 배출되기 시작하고 두 어깨가 딱딱하게 굳으면서 몸이 45도 앞으로 기웁니다. 운전 선생님이 긴장을 좀 풀라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시더군요.


안 되겠다 싶어 주행 시험 전에 2시간 연수를 신청했습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고속도로를 타야 한다는 현실에 눈앞이 깜깜 해지더군요. 학원 내 연습 도로와 시내 구간만 돌 때보다 훨씬 더 긴장됐습니다.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순간엔 손에 땀이 비 오듯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어요. 긴 곡선 구간을 돌 때면 몸도 곡선을 따라 같이 기울었습니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어요. 무섭기도 했지만 시내구간보다 속도를 내며 달리는 고속도로 주행은 긴장 가득하면서도 뭔가 짜릿한 잊지 못할 경험이었습니다. 무사히 고속도로 주행을 마치고 시내 구간으로 돌아왔을 땐 오히려 느린 속도감에 답답함이 느껴지기까지 했으니까요.


2시간 연수는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큰 실수 없이 실기 시험에 합격하고 면허증을 받았을 때 그 감격이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자신이 뿌듯하게 느껴지더군요.


'네가 해냈어! 정말로 해냈어! 대견하다.'


하지만 합격의 기쁨과 함께 운전면허증은 장롱 속으로 고스란히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운전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던 거예요. 그렇게 운전면허증은 이력서의 자격사항에 한 줄을 채울 뿐이었습니다.


30대 후반에 새롭게 취업한 회사에선 각종 인허가 서류를 작성해서 관공서에 우편을 보내거나 직접 제출을 해야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자연스레 전국 각지로 운전을 해야만 했죠. 또다시 운전에 대한 무언의 압박을 받기 시작합니다. 운전 면허증을 딴 이후로 운전대를 잡아본 적이 없던 저에게 운전은 커다란 두려움이자 극복해야 할 무언가로 다시금 다가왔습니다.


운전 연수를 시켜주겠다던 직장 동료들은 목숨의 커다란 위협을 느끼고는 모두 포기해버렸어요. 운전해서 가면 가까운 거리지만 우편물이라도 우체국에 보낼라치면 부탁하는 것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더군요. 그렇게 추운 겨울에도 더운 여름에도 걸어서 우체국을 가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서러운 마음이 들면서 운전이 절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용기를 내보자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그리곤 운전 연수를 신청했죠. 몇 년 만에 운전대를 다시 잡은 손에선 새록새록 긴장한 땀들이 솟아났습니다. 두 어깨는 경직되고 몸이 앞으로 45도 기울었어요. 이번에도 역시나 운전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긴장을 풀라고 재차 말합니다.


좌회전을 하는데 오른쪽 깜빡이를 켭니다. 우회전을 하는데 왼쪽 깜빡이를 켭니다. 손에서 뿜어 나온 땀들로 운전대가 물듭니다. 그렇게 험난했던 운전 연수를 마치고 처음으로 운전을 해서 우체국을 찾아갔습니다. 우체국의 좁은 주차공간으로 들어가 주차할 때도 손에 땀을 쥐었습니다. 무사히 우체국을 다녀온 후론 가까운 거리는 운전해서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른 직원들은 철원, 홍성, 익산 등 장거리로 운전을 다녀야 했습니다. 장거리 운전을 하려면 고속도로 주행이 필순데 하이패스로 진입하고 높은 속도를 유지하며 주행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저는 되도록 장거리 운전을 피했습니다. 그러다 허가증에 기재사항이 잘못되어 당장 충북 옥천에 다녀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어요. 문서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저의 실수도 있었기에 운전대를 잡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눈앞이 캄캄했지만 상황 설명을 하고는 차키를 들고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넌 할 수 있어. 아니! 해야만 해. 한번 해보자!> 크게 숨을 한번 들이마셨습니다. 그리곤 차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4시간여에 걸쳐 옥천을 다녀옵니다.


다음 날, 직장 동료들이 살아 돌아왔냐며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더군요. 그날 이후로 자주는 아니지만 지방 출장을 다니곤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여름휴가 때 렌터카를 빌려 엄마를 모시고 가평을 다녀왔습니다. 엄마는 운전을 하는 저를 항상 걱정하셨지만, 가평을 다녀온 이후로 <역시 엄마 딸이야! 운전 잘하더라.> 하시며 기특해하시더군요. 부모님으로부터 듣는 인정의 한마디는 자신감의 자양분이 됩니다.


유난히 어려서부터 겁이 많던 아이는 자라서 겁이 많은 덩치만 커다란 중년이 되었지만, 일상 속의 두려움들을 조금씩 극복할 때면 잔다르크 같은 강인한 여인의 향기를 자신에게 맡으면 <이게 나다!> 라며 자신에 대한 신뢰를 조금씩 쌓아갑니다.


두려움이 앞설 때 그 두려움들 사이로 끄집어낸  작은 용기들이 저를 저답게 만들어줍니다. 그렇게 조금씩 제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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