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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내향인의 인생 표류기]

드르. 드르륵.

두껍고 커다란 나무 창틀의 거실 창문이 힘겹게 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생 녀석은 집에 가만있으라는 엄마의 충고를 무시하고 앞뜰로 연결되는 거실 창문을 기어이 열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동생을 반기는 동네 아이들과의 떠들썩한 소리가 커졌다 다시 작아지며 사라져 갔다. 현은 우두커니 어둑한 방 안에서 동생의 일탈이 가져올 소란이 두려워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현은 그 후로도 그 자리에 오랜 시간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엄마가 돌아온 후에도 집으로 돌아올 생각을 않던 동생 녀석은 결국 땀범벅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고 그날 밤은 한바탕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어둠 속에 잠들어 있던 동네 별들을 흔들어 깨웠다. 이상하지만 동생의 일탈 이후로 엄마는 더 이상 외출 금지령을 발동시키지 않았다. 그렇게 동생 녀석은 자유를 얻었고 해맑은 얼굴로 뛰어나가 온통 땀범벅이 될 때까지 밭에서 뒹굴며 동네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녔다. 현은 그런 동생을 영혼 없는 눈을 하고서 바라볼 뿐이었다. 현이 스스로에게 허용한 자유는 현관문 밖 1평 남짓한 공간에서 마른 인형을 가지고 혼자 앉아서 노는 것이 다였다. 현의 앙 다문 입은 드라마에서 보았던 착한 아줌마, 나쁜 아줌마 흉내를 내며 인형 놀이에 심취해 앞으로 주욱 나왔다. 혼자여도 외롭다고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현이 인형의 마른 머리를 빗으로 빗기고 있으면 엄마는 현의 머리를 빗겨 주었다. 학교 가는 날이면 엄마는 고데기의 온도를 올렸다. 엄마의 인형놀이가 시작되는 것이다. 예쁜 원피스를 잘 다려 입히고 반 묶음을 한 머리를 고데기로 예쁘게 말아 캐릭터 가방에 예쁜 구두까지 현에게 장착하면 엄마는 흡족한 미소를 짓는 것이다. 그런 엄마와는 반대로 현의 뾰로통한 입은 나와서 들어갈 줄을 모른다. 현이 사는 동네는 논밭이 주를 이루는 시골이다. 이런 시골에서 그런 몰골로 학교에 가면 아이들의 질투와 부러움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는 것이 당연지사. 현은 그런 게 끔찍하게 싫었다. 엄마의 인형놀이를 거역할 힘은 없으니 입만 뾰로통해지며 뚱한 표정만 나올 뿐이었다. 그런 현이 엄마는 못마땅했다. 남들은 안 해줘서 불만인데 당최 자신의 속으로 낳았지만 성격이 왜 저런지 속만 답답할 뿐이었다. 그렇게 엄마와 한바탕 씨름을 해야만 현은 학교에 갈 수 있었다. 현은 논길 사이로 걸어가면서 자신의 새 원피스가, 새 구두가 부끄러웠다. 당장 벗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꾸역꾸역 불만스러운 얼굴로 느릿느릿 길을 걸을 뿐이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현은 신발장에서 새 구두를 찾지 못했다. 어, 분명 여기 두었는데. 구두가 보이질 않았다. 순간 엄마의 성난 얼굴이 떠오른 현은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심장이 쿵쾅쿵쾅 울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에게 말을 하거나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데 도통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그대로 이마에서 흐른 식은땀은 눈을 타고 눈물이 되어 입가로 새어 들어와 찝찔함을 남겼다. 현은 실내화를 그대로 신은 채 집으로 향했다. 동생 녀석은 저 멀리 운동장에 자리 펴고 않아 흙구덩이 속에서 모래성을 쌓으며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입가에 연신 미소를 띠며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집으로 걸어가며 현은 처음으로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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