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앙투안 앙리 베크렐
1903년 노벨 재단에서는 앙투안 앙리 베크렐에게 "자연 방사능의 발견"이라는 주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해당 연도 노벨 물리학상은 베크렐과 함께 퀴리 부부로 알려진 피에르 퀴리, 마리 퀴리도 같이 수여됐다. 그러나 이번 글에서는 베크렐을 집중적으로 다뤄보자.
21세기인 지금에야 방사능은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들어볼 수 있는 어느 정도 익숙한 개념이 되었지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으로 넘어갈 시기에는 방사능이란 정말 놀라운 물질의 성질이었다. 그래서 방사능의 유해성이 밝혀지기 이전에는 치약, 화장품, 초콜릿 심지어는 생수에 타마시는 등 곳곳에서 방사능 물질을 사용했었다. 도대체 왜 방사능의 발견이 그렇게 놀라웠던 걸까? 그 이유를 먼저 살펴보자.
방사능 물질의 가장 큰 특징은 스스로 빛을 내는 특성이다. 어렸을 때 방에 붙어있던 야광 스티커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운데 우리가 전원을 연결해 줘야 빛을 내는 형광등이나 LED와 달리 야광 스티커는 그 자체로 미약한 빛을 방출하기 때문에 주변이 어두워지면 야광 스티커가 방출하는 빛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이 방사능을 처음 발견했을 당시 과학자들이 놀라워했던 부분이다.
베크렐의 발견 이전에 빛을 얻는 방법은 물체를 가열시키거나 인광 물질을 사용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뜨거워진 물체가 빛을 방출한다는 사실은 인류가 불을 발견하면서부터 알고 있는 지식이었다. 19세기 말엽인 당대에도 물체의 온도와 방출하는 빛의 색상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지난 글에서 다룬 제이만 효과 또한 이러한 연구의 연장선에 있었다. 물체의 온도를 가열하기 위해선 외부에서 에너지를 가해야 하며 대표적으로 전구의 경우 저항이 큰 필라멘트에 전기 에너지를 가해 저항에 의한 열을 만들어내고 이 열이 필라멘트를 가열해서 빛을 내는 원리다.
이와 달리 인광 현상은 인광 물질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에서 기인한다. 일반적으로 물질에 빛을 비추면 해당 물질은 빛을 흡수하고 다시 방출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형광 현상이라고도 부르는데 인광과 형광은 서로 유사한 현상이지만 인광의 경우 흡수된 빛이 원자에 잠시 저장된 다음 방출되어 빛이 더 오랫동안 방출되는 현상이다. 빛을 잠시 저장하는 독특한 특성이 인광의 비밀이다.
열에 의해서든 인광 물질을 이용하던 결국 외부에서 어떤 에너지를 공급해 줘야 물체가 빛을 낼 수 있다. 하지만 방사능 물질은 이와 정반대로 외부에서 어떤 에너지를 공급하지 않아도 빛을 방출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외부의 에너지 공급이 없이 돌이 스스로 빛 에너지를 그것도 꾸준히 균일하게 방출한다는 것은 마치 에너지 보존 법칙을 위배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과학자들의 이목을 끌었었다.
이제 베크렐이 어떻게 방사능을 발견했는지 알아보자. 베크렐이 방사능을 발견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은 빌헬름 뢴트겐의 X-선 발견이었다. 뢴트겐은 멀리 떨어진 인광 물질이 정체불명의 광선에 반응하는 현상을 통해서 X-선을 발견했다. 뢴트겐이 초점을 맞춘 부분은 인광 물질이었다. 베크렐에게는 '어떤 인광 물질을 사용하더라도 똑같은 현상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특히 우라늄염이라고 부르는 물질은 인광 특성이 독특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베크렐은 이러한 특성은 우라늄염의 인광 현상이 일어날 때 X-선이 방출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우라늄염이 베크렐이 원하는 실험에 가장 적합하다고 여겼다.
실험을 위해 베크렐은 사진판을 준비한 다음 외부 빛을 차단하기 위해 검은 종이로 사진판을 감쌌다. 그리고 그 위에 우라늄염을 올려두고 햇볕을 쬐어 우라늄염의 인광 현상이 일어나도록 유도했다. 이미 뢴트겐에 의해서 X-선은 검은 종이를 투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만약 우라늄염이 X-선을 방출한다면 사진판은 X-선에 반응할 것이라는 기대였다. 결과는 예상대로 우라늄염에서 X-선이 방출되어 검은 종이를 투과해 사진판에 도달했고 사진판은 X-선과 반응해 검게 변했다.
우라늄염이 X-선을 방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후 베크렐은 후속 연구를 진행하려 했지만 불행하게도 당시 베크렐이 있던 파리에는 흐린 날이 지속되었고 햇볕을 얻을 수 없었던 베크렐은 잠시 실험을 중단해야만 했다. 베크렐은 혹시 모를 외부의 빛으로부터 사진판을 보호하고 우라늄염의 인광 현상을 막기 위해 실험 장비들을 어두운 서랍 안에다 보관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날씨가 맑아지자 실험을 다시 진행하고자 서랍을 연 베크렐은 놀라운 일을 발견했다. 바로 사진판이 검게 변한 것이었다.
사진판은 검은 종이로 감싼 상태였기 때문에 어떤 외부의 빛이 사진판을 반응시킨 것은 아니었다. 종이를 투과할 수 있는 범인은 X-선밖에 없고 베크렐은 우라늄염이 X-선을 방출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우라늄염 또한 외부의 빛과 차단되었기 때문에 인광 현상은 일으키지 못해야 했으므로 이는 우라늄염에서 방출되는 X-선은 인광 현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우라늄염은 외부에서 어떤 에너지를 공급하지 않아도 스스로 X-선을 방출하고 있었다.
앞서 다뤘듯이 외부에서 어떤 에너지 공급 없이 우라늄염 스스로 빛을 내는 현상은 당시에 정말 놀라운 현상이었다. 베크렐은 우라늄염뿐만 아니라 원래부터 인광 현상을 일으키지 않는 순수 우라늄 금속으로도 확인해 봤고 마찬가지로 X-선이 방출됐다. 심지어 순수 우라늄 금속은 X-선 현상을 더 강하게 일으켰다.
만약의 가능성을 위해 베크렐의 발견이 인광 현상의 한 종류로서 흡수한 빛 에너지를 모두 방출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아주 길기 때문에 이전에 흡수한 빛을 긴 시간 동안 방출하는 현상이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경우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라늄이 방출하는 X-선의 세기가 점점 약해져야 한다. 하지만 베크렐은 후속 실험을 통해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우라늄의 자발적인 X-선 방출 세기가 일관되고 뚜렷함을 발견했다. 이는 인광 현상에 의한 전자기파 방출이 아니라는 확고한 증거였다.
더욱이 후속 실험에서 베크렐은 우라늄은 X-선에 더해 다른 종류의 새로운 광선도 자발적으로 방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미 뢴트겐에 의해서 X-선은 외부 전자기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전기적으로 중성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는데 X-선과 달리 새로운 광선은 전자기장의 영향을 받았다. 이는 베크렐이 발견한 새로운 광선이 전하를 띠고 있다는 뜻이었다. 새롭게 발견된 이 광선에는 '베크렐 선'이라는 이름을 붙여졌다.
이후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베크렐 선이 알파, 베타, 감마선 3가지 종류로 분류됨을 발견하였으며 현대에 알파선은 헬륨 원자핵과 동일하게 양성자 2개, 중성자 2개가 결합한 양전하를 띠는 입자임이 밝혀졌다. 또한 베타선은 고에너지를 지닌 전자 혹은 양전자였으며 감마선은 X-선과 같이 빛의 한 종류지만 그 에너지가 X-선보다도 훨씬 강해 감마선이라는 에너지 대역의 빛으로 따로 분류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종류의 광선을 방출하는 현상에 마리 퀴리는 '방사능'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현대적인 해석을 따르면 베크렐은 물질이 스스로 알파, 베타, 감마선들을 방출하는 현상을 발견했으며 우라늄과 같이 원자 번호 높은 물질이나 동위원소라고 일컬어지는 중성자로 인해 다소 불안정한 원자핵을 가지는 물질들이 스스로 알파, 베타, 감마선들을 방출한다. 물질이 입자나 전자기파를 방출하는 특성을 방사능이라고 부르며 방출된 알파, 베타, 감마선은 방사선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우라늄이나 플루토늄과 같이 원자 번호가 높은 물질이나 동위원소가 방사능을 가지는 이유는 양자역학이 개발되면서 설명됐다. 방사성 붕괴를 일으키는 원자핵은 많은 수의 양성자와 중성자가 결합하거나 중성자로 인해 원자핵이 불안정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불안정한 원자핵은 스스로 붕괴하여 상대적으로 안정한 낮은 원자번호를 가지는 원자핵들로 쪼개지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양자역학을 이용하면 시간에 따른 원자핵의 붕괴 확률로 계산이 되는데 확률을 이용하면 N 개의 원자핵이 주어질 경우 이중 반인 N/2 개의 원자핵이 붕괴하는데 걸리는 통계적인 시간을 계산할 수 있다. 이 시간을 반감기라고 부르며 방사성 원소들은 절반이 붕괴되어 완전히 다른 원자로 변경된다.
높은 원자 번호를 가지는 원자핵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마치 파편처럼 2개의 양성자와 2개의 중성자가 헬륨 원자핵의 형태로 방출되는데 이것이 베크렐이 발견한 알파선이다. 이러한 붕괴를 알파 붕괴라고 부른다. 예외적으로 동위원소 붕괴에선 베릴륨이 낮은 원자 번호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붕괴하는 원자핵이 양성자 4개 중성자 4개이기 때문에 안정된 2개의 알파선으로 쪼개지며 나머지 동위원소들은 알파 붕괴를 일으키지 않는다.
쪼개진 원자핵들은 일반적으로 동위원소로 붕괴되어 여전히 다소 불안정한 원자핵을 가지고 있다. 또는 방사성 붕괴를 일으키는 동위원소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데 동위원소 불안정한 이유는 주로 양성자와 중성자 사이의 개수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각 원자핵에는 원자핵을 아주 오랜 시간 유지할 수 있는 적당한 개수 배합이 있음이 경험적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러한 배합을 맞추기 위해 몇몇 중성자가 전자를 방출하고 양성자로 변하거나 양성자가 양전자를 방출하고 중성자로 변해 균형을 맞추게 된다. 이를 베타 붕괴라고 하며 이때 방출된 전자 혹은 양성자가 바로 베타선의 정체다. 알파, 베타 붕괴의 두 과정을 거친 원자핵은 여전히 높은 에너지를 머금고 있고 마지막으로 에너지를 감마선이라는 전자기파의 형태로 방출해 안정된 원자핵이 된다. 이 전자기파를 방출하는 과정을 감마 붕괴라고 부른다.
일련의 원자핵 붕괴 과정은 베크렐의 발견대로 외부의 에너지 공급 없이 원자핵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반대로 인간이 직접 불안정한 원자핵을 자극해 붕괴 과정을 유도할 수 있다. 오토 한과 리제 마이트너가 발견했으며 오토 한은 194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이 발견을 시발점 삼아 인간이 조절하는 방사성 붕괴를 이용해 원자 폭탄과 원자력 발전의 개발로도 이어지지만 해당 내용은 중성자의 발견과 연결되고 중성자의 발견은 또 다른 노벨 물리학상의 주제가 되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는 다루지 않고 아껴두도록 하자.
베크렐의 일화를 보면 방사능은 아주 우연히 발견되었다. 물론 인광 현상에 대한 특성을 연구하기 위해 사용한 베크렐의 창의성과 실력은 의심할 바가 없지만 항상 과학이란 으레 그렇듯이 호기심과 노력이 역사적인 발견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