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제가 시누이 복은 있어요.
소개팅에서 결혼까지 6개월이 걸렸다.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호감이 생겼고 남자는 훨씬 더 적극적으로 대시하며 결혼을 빠르게 추진했다.
30년 가까이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의 속도와 방향으로 살아온 남녀가 마주친 타이밍은 완벽했지만 온전히 둘만을 알아가기엔 시간이 벅찼던 연애였다.
봉이는 결혼하고서도 연애의 연장처럼 서로를 알아가고 맞춰 나가는 과정이 참 새롭고 설레었다.
남편이 자주 해준 학창 시절, 군대와 회사 이야기 등 그가 만들어 왔던 세계와 마주 하는 경험은 소중했고 그를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 그는 가족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않았다.
“아들 하나에다가 위로 시누이가 많은 건 좋은 조건은 아니잖아. 나랑 결혼해 줘서 고마워”
위로 누나 셋, 장손인 막내아들이라는 타이틀이 결혼에 걸림돌이 될 수 도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가 농담 반 진담 반 흘리는 말에 봉이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일단 시누이들과 남편, 아이들을 결혼식날 하루를 제외하곤 만난 적이 없었다.
한분은 해외에 계실뿐더러 다들 바쁘신지 시가에 잘 오지도 않아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떠올리는 비중이 낮았다.
어느 날 봉이는 남편과 그의 대학교 캠퍼스로 주말 나들이를 갔다. 한참을 둘러보며 사진도 찍고 우리가 어렸을 때 만났으면 어땠을까? 이런저런 웃긴 얘기도 하면서 깔깔거렸다.
“오빠! 궁금한데 형님들은 어느 학교 다녔어?”
“……그게 누나들은 셋 다 대학 안 갔어.”
“아… 그래… 뭐 대학을 꼭 가야 하는 건 아니지만 오빠 부모님 마음이 편하진 않으셨겠네.”
“……사실 부모님이 안 보냈어. 애들도 넷이나 되는데 큰돈 쓰는 게 부담이셨나 봐. 가고 싶으면 니들이 벌어서 하라는 주의 같은 거..
근데 둘째 누나는 공부도 제일 잘했고 대학에 가고 싶어 했었지. 다들 집에서 벗어나려고 결혼도 20대 초반에 빨리하고 나간 거야.”
봉이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 당황했다.
누구나 인생의 다양한 계획이 있고 대학이 필수 선택지는 아니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공부에 뜻이 있는 자녀를 부모로서 지원해주지 않았다는 말이 놀라웠다.
심지어 경제적으로 그리 어려운 형편도 아닌데 말이다.
이와 달리 들은 바 남편은 부모님의 공부 압박에 개인 과외를 몇 개씩 붙여 대입을 준비했다 하니 이건 자식이 많고 적고를 떠나 아들 딸 차별이 분명해 보였다.
또 그러한 분들이 원하는 며느리감은 웬만한 대학은 나와야 했고 직업이 선생님이거나 튼튼한 직장을 선호하셨다 하니 앞뒤 안 맞는 적나라한 속사정에 마음이 거북해졌다.
‘딸들을 얼마나 서운하게 만들었으면 누님들이 친정을 안 오는 걸까. 아들이 뭐 그리 대수라고. 대학도 지원이 없었는데 결혼할 때 혼수며 잘 챙겨주긴 하셨을까?’
남녀 차별하는 시가만은 꼭 피해야지 했던 우려가 딱 들어맞는 이야기에 마음이 착잡해져 갔다.
그리고 이런 집안 분위기에서 펼쳐질 그녀 앞날에 대한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다행인지 남편은 시누이들과 사이가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분들은 아직도 크고 작은 집안 행사나 모임에 참여하지 않으시고 당연히 지출이 필요한 내용에도 N분의 1은 일절 없이 우리가 감당하고 있다.
각자 살기 바쁘다지만 남편과 카톡이며 통화로 종종 안부를 묻고 우리 막내 고생하네 말이라도 해주신다니 나는 그저 감사하다. 나의 험난한 ‘시’의 세계에 숟가락을 얻지 않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다.
내 편도 아니고 말리는 시누이도 아니고 열심히 본인 삶을 살아가시는 형님들..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