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손

평범한 시어머니 되기

by 밤하늘에 펄


봉이가 첫 아이를 낳았다.

반나절이 지나 정신을 좀 차린 후 병원에서 매일 두 번씩 있는 모자 타임에 참여했다. 조금 불편한 몸이었지만 자연분만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내 아기라고 건네는 작고 귀여운 생명체와 주어진 20분 동안 고요히 교감하는 시간이었다.

아기를 오롯이 들여다보며 들숨 날숨 간지러이 움직이는 솜털에 얼굴을 살포시 대어보았다.

진통으로 끊어질 뻔한 허리는 언제 그렇게 아팠더라? 입덧으로 괴로웠던 시절, 왕복 2시간 출퇴근의 고달픔은 말랑한 아기 냄새에 묻혀 사라졌다.


오물오물 입을 움직이며 내 엄마를 찾는 아이에게 가슴을 내어주는 행위는 참 어색하지만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지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젖이 철철 나올 리 만무하지만 잠깐 동안 살을 맞댄 세상 밖 둘만의 만남은 참으로 특별했다.

‘이제 우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특별한 사이야’

아기와의 시간은 사랑과 기쁨으로 봉이의 마음을 충만하게 채웠다.


모자 타임이 끝나고 병실로 올라왔을 때 시부모님이 막 도착해 계셨다. 가족 모두가 첫 손주의 탄생에 기대와 설렘으로 열 달을 함께 기다렸다. 특히 막내 외아들의 아이가 손자라는 이야기에 이름 짓는 것부터 산후 조리원까지 신경 쓰신 시부모님이셨다.


“아가야, 고생 많았다”

“아기 만나고 왔다면서? 그래서 면회는 몇 시부터니?”

“네 방금 모자 타임 다녀왔어요. 조그만 게 너무 신기해요. 대면 시간 확인해 볼게요.”

부산스러워진 병실에서 이미 와계셨던 친정엄마와 남편은 두 분의 앉을자리를 마련하고 마실 것을 건네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봉이가 어기적 천천히 침대 쪽으로 가 앉으려는 찰나.

시어머니는 돌연 봉이의 가슴을 양손으로 감쌌다.

“그래. 젖은 좀 잘 나오니?”

……


잠깐 동안 시간이 멈췄다.

what the?

어째서?

뭐 만져보면 모유 양이 알아지나요?

손을 뻗어 닿기까지 이성이 보내는 수많은 필터링 신호는 고장이 났는지 일차원적 욕구의 발현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봉이는 그날 여자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출산이라는 과정을 경이롭게 경험하고서 반나절만에 여자 인간이 강하게 느낄 법한 수치심의 절정을 맛보았다.


겨우 어깨로 몸을 비틀며 접촉을 중단시켰다.

“에구머니나”

눈앞에서 목격한 친정엄마도 말문이 막힌 채 놀란 눈으로 쳐다보셨다.

“괜찮지? 나 간호사잖아.”

아무런 구실도 되지 않는 괴변…

도대체 무엇이 괜찮다는 말인가.

봉이의 우유공장 상태? 아님 본인의 무례함의 정도가?

한 번쯤 상상해 봄직한 인생사 시뮬레이션으로도 굴려본 적 없는 날벼락이었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무력감이 밀려왔다.

면회고 뭐고 당장 집에 돌아가 주기만 바랄 뿐이었다.






어쩌면 나는 너무나 순진하게 둘만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꿨나 보다. 그를 확신하고 자신 있게 선택했지만 부끄러운 시가도 내 인생에 함께 딸려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 피부에 잘 맞는 제품을 겨우 발견해 사긴 샀는데 한가득 껴준 사은품이 있었더랬다. 발라보니 트러블만 잔뜩 생기는.


그때의 시어머니는 단순히 며느리 우유공장의 안위가 염려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의 몰상식을 사부인과 세상에 드러내고자 결심하신 걸까?

젖이 불지도 않았던 그때의 가슴은 여전히 분하고 답답하다.


그날의 기억 덕분에 시어머니께서는 열쇠 하나를 받게 되셨다.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경멸의 방 열쇠.

애정과 연민의 방에 마련된 따뜻한 아랫목은 한사코 마다하시고 기어이 그곳에 가고 싶어 하신다.

말릴 수 없는 현재 진행 중인 나의 현실이다.

님아 제발 멈춰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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