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사도 못 견딜 추위
결혼 후 처음 맞이하는 구정이었다.
시아버지의 여동생 두 분을 제외한 세분의 작은 아버지 가족들과 함께하는 명절이었으며 봉이는 그들에게 처음 맞은 며느리였다.
장손임에도 다행히? 제사는 따로 지내지 않고 가족들과 다 같이 추도예배 형식으로 보낸다는 이야기가 단지 제사 음식을 상에 올려 절하지 않을 뿐, 음식을 구색에 맞게 명절 전날부터 한껏 준비하고 모든 형제와 사촌 가족들이 연휴 내내 방문할 것이라는 것까진 생각 못한 어리숙한 그런 며느리 말이다.
봉이는 구정 전날 점심때부터 작은 어머니들과 함께 음식 준비를 하신다는 시어머니의 전화에 신고식을 준비하는 신입생의 마음으로 앞치마를 가방에 넣었다.
그날 신입의 임무는 배추전, 동태전, 삼색 꼬치전, 동그랑땡 순서대로 밀가루 입혀 계란물 담갔다가 팬에 부치는 단순노동이었다.
“졸병은 원래 전 담당이야”
막내 작은어머니께서 하사하신 뒤집개와 소쿠리를 받아 들고 서서 20년 만에 갈비 파트로 승진하신 그분을 축하해 드려야 하는 건지 봉이는 잠시 생각했었다.
“부엌은 여러 사람이 있어서 비좁고.. 전 부치는 건 편하게 저기서 해”
가리킨 부엌 바로 옆 좁은 다용도실에는 명절 전용 전기팬과 편하게랑은 거리가 먼 목욕탕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몰라.
칼질하고 간 맞추기는 나에겐 넘사벽이지.’
봉이는 단순히 갓 구운 전을 몰래몰래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전 담당인 것이 내심 좋았다.
30분 정도 진행했을까, 아무리 전기팬 앞이라 해도 한겨울의 다용도실은 생각보다 너무 추웠다.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니 바깥쪽 샤시 방충망이 모두 열려있었고 한기는 그쪽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봉이는 춥던 게 좀 나아질까 싶어 얼른 열린 방충망을 닫고 부엌과 다용도실에 연결된 중문을 열었다.
집안의 온기가 들어와 한결 따뜻해졌다.
그리고 얼마 뒤 시어머니가 들여다보시더니
“어때. 할만하니?……어머? 방충망 누가 닫았어?
환기가 잘 돼야 돼”
하시며 바깥샤시 방충망을 다시 여시는 게 아닌가.
“근데 좀 추워요. 어머님”
“불 앞이니까 괜찮아”
한참을 쭈그려 앉아 열심히 부쳤는데도 남은 양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춥기까지 하니 속도가 더딘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또 시어머니는 봉이가 온기를 느끼고자 열었던 부엌 중문을 보이는 대로 오며 가며 슬그머니 계속 닫는 것이었다.
열면 닫고 다시 열면 또 닫고…
‘다 할 때까지 들어올 생각 말라는 뜻이라 해석해야 하나요?’
감옥이 따로 없었다.
알고 보니 집안에 기름 냄새 들어오는 건 더 싫었다고 한다.
“어뜩해! 아직도 여기 있었어?”
시아버지와 동네 사우나 갔다 마트로 심부름 다녀온 새신랑의 얄궂은 타이밍에 눈물이 핑 돌았다.
장장 세 시간도 넘게 그곳에서 봉이는 산더미 전과 함께 철저히 단절되었다.
아주 완벽한 차단.
좋아하는 전은 그날 입에도 대지 않았다.
유리문 너머 집안의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차가운 다용도실에서 그녀는 새로운 가족 구성원 아닌 하나의 값싼 노동력으로 하루를 오롯이 보냈다.
기대가 있었다.
우리 부모님 같을 거란 기대, 나를 똑같이 자식처럼 대해 줄 거란 기대, 나 혼자 수평으로 시작한 인간관계는 결혼 초 금세 무너졌다.
서툴면 기다려주고 실수는 같이 웃어넘기는 따뜻하고 너그러운 포용이 그곳에 있는 줄 알았다.
그렇게 춥거나 말거나 매정하게 문을 닫으셨으니 나 역시 추우면 언제든 과감히 마음의 문을 닫는다.
나는 여전히 전 부치기 담당이다. 부엌 옆 다용도실에서 이젠 누가 문을 닫던 말던 아랑곳 하지 않고 들락날락 나를 찾아오는 아이들 입에 갓 구운 전을 쏙 쏙 입에 넣어주고 있다.
그리고 그해 돌아온 추석.
시어머니는 습관처럼 열어놓았던 방충망으로 들어온 모기떼에 밤새 스무 방 이상 물리시고 다시는 방충망을 열지 않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