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지금 이 시대에 교사 성장기를 되돌아보며
Y2K! 밀레니엄시대의 새로운 서막!
세기말!
밀레니엄 버그!
천년의 기다림!
또 없을까? 뭔가 이런 혼란과 흥분의 분위기를 대변할 처음 보는 단어들 말이다.
인류는 2000이라는 '오래된' 숫자를 마치 처음 마주하는 듯,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2000년 1월 추운 겨울을 지나치고 있었다. 1000년 만에 새로운 첫 숫자를 만나는 인류였기에 그 흥분이 남달랐겠지만, 불 꺼진 어두운 거실에서 maxon 무선전화기를 들고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방으로 다시 걸어 들어오는 스물여섯의 수염 거뭇거뭇한 청년에겐 그런 흥분도 사치였으리라.
부끄럽다. 실명을 밝힐 수는 없다.
리얼리티 연애프로그램이 인기이기에 이 글을 쓰는 주인공을 영철이라 칭하겠다. 당연히,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이 글은 전개될 것이다.
다시, 2000년 1월의 추운 겨울밤으로 돌아온다.
정확히 밤 12시가 지난 시점, 엄마 아빠에게 전화기 버튼 소리가 들릴까 조심스레 이불속에서 전화기 버튼을 누른다.
"수험번호를 입력하시고"
"이. 공. 공. 공. 삼. 칠. 이. 사. 별표 맞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표정으로 신중히 버튼을 누른다.
"잘못 누르셨습니다. 수험번호를 입력하시고 우물정자를 눌러주십시오."
"하……"
3초나 흘렀을까? 단언컨대 영철이 살아왔던 스물 다섯 해의 어느 순간보다도 영철의 지금 그 3초보다 더 길었던 순간은 없었을 것이다. 이윽고, 호프집 생일손님을 축하할 때나 들어보았던 경쾌한 팡파르 소리와 함께 수화기 너머로 경쾌한 목소리가 전해진다.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불을 켤 새도 없다. 거실의 한쪽 벽에 달려있을 스위치의 위치도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터져 나오는 탄성을 정말 손으로 틀어막으며 울음인지 웃음인지도 모를 표정이 어둠에 감춰져서 다행이다. 엄마 아빠께서 대화중이셨건, 주무시고 계셨건, 혹은 음……. 중요치 않다. 아무튼 지금은 오롯이 영철의 감정에만 치우쳐 안방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후다닥 안방 불을 켠다.
"엄마! 아빠! 저 00교육대학교에 합격했어요!"
"뭐!! 뭐!! 왜?? 왜?? 도둑 들었어?"
"저, 엄마 아빠 몰래 수능 준비했었고 교육대학교에 합격했다고요. 나, 이제 내가 하고 싶었던 교사 할 수 있어요."
"교사?? 국민학교 교사??"
잠깐의 침묵이 흐른다. 그리곤 이내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철의 기억에 잊혀지지 않을 한 마디가 축하의 문장대신 가슴에 들어앉고 있었다.
"그럼, 다시 4년의 등록금을 대야 한단 말이냐?"
영철은 아무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부모님의 말씀을 이해한다. 그도 그럴 것이 취업이 잘 된다는 공대를 3학년이나 이미 마쳤고, 군대도 다녀왔으며, 영철이 1년만 학업을 더 마치고 졸업을 하면 부모님은 은퇴를 계획 중이셨으니 부모님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교사라는 꿈을 드디어 이루게 된 영철에게도 환희의 순간이 조금은 더 길었어야 했다. 멋쩍은 웃음과 잘해보겠다는 말씀을 남기고 방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영철은 도파민과 아드레날린과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 아, 이건…… 아니겠다. 아무튼 수많은 호르몬이 혈액까지 돌아다님을 느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6년을 되돌아와 교사의 꿈을 이루도록 영철을 이끌었던 것일까?
그 시절 교사의 사회상은 어떤 모습이었기에, 부모님께서는 영철의 교사 첫걸음을 달가워하지 않으셨던 것일까? 그 히스토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물론, 전지적 작가시점이니만큼 이번엔 어머니의 목소리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