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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준 Sep 29. 2021

운이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이유?

12편, 운을 활용할 수 있을까?

운을 타고나는 것은 내 선택의 영역은 아니나
운을 활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현재 내가 운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위와 같다. 운은 우리의 노력 여하와 관계없이 모두에게 복불복으로 찾아온다. 우리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음에도 사람들은 '운'이라는 것을 기대하기도 하고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한탄하기도 한다. 인생을 논하는 자리에서 운은 떼어두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어린 시절 학교를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부터 '타고난 운'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크게 보면 태어난 시대, 태어난 국가, 태어난 도시는 복불복으로 결정되었고, 개인의 입장에서는 성별, 외모, 집안 등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졌다. 처음에는 다름에 대해 둔감하지만 집단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차이점을 느끼고 비교해보면서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은 인정하고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현실적인 사람들은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빠르게 구분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한다. 타고난 운을 바꿀 수 없지만 노력을 하면 뿌린 만큼 거둬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력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지 않을까? 


    이런 믿음이 깨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창 시절 학생으로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공부다. 처음 공부라는 경쟁 속으로 들어가 보면 생각보다 평등하게 느껴진다. 내가 노력한 만큼 어떤 결과물이 얻어진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를 통해 얻어가는 성취감은 학창 시절에만 꼭 느껴야 할 성취감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위권으로 올라갈수록 평등이라는 믿음에 금이 생기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그다음부터는 '타고난 운'의 싸움이 되는 것이다. 남들보다 높은 두뇌 효율을 가진 친구, 특정 분야에 높은 이해도를 가진 친구, 엄청난 암기력을 보유한 친구, 자금력으로 다른 것들을 커버하는 친구... 그런 위치에서 비교를 하자면 나는 어느 하나 특출한 부분이 없다고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어중간한 느낌이었다. 내가 그들의 능력을 뒤 따라잡을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노력'외에는 없었다. 주변에서는 내가 어릴 때부터 타고난 천재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공부도 못해본 경험이 있고 스스로에 대한 한계도 많이 겪어본 사람이었다. 나는 노력을 통해 한 계단 씩 밟아온 사람이기에 늘 타고난 사람들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더 끊임없이 노력했다.       


    시험을 보면 가끔 한 두 문제는 풀지 못하고 찍는 경우가 있다. '오지선다 문제'에서 아닌 답을 제치고 나면 꼭 두 가지 정도의 선택지를 남기고 갈등을 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 항상 내가 고른 답은 오답이었다. 혹자는 '맞은 건 실력이라 생각하여 까먹고, 틀린 것만 기억하는 것 아니냐?'라고 할 수 있는데... 정말 10에 8~9은 틀릴 정도로 항상 찍는 것에는 운이 없었다. 반대로 주변 친구들은 찍을 때마다 정답을 고르는 '찍신'이 있었다. 상위권에서는 한 두 문제만 잘 찍어도 등급이 바뀌고 대학이 바뀐다. 반대로 운이 안 좋아 시험 당일에 삐끗하면 대학이 몇 단계 이상 추락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렇게 운이 없는 나는 늘 수능에 대한 부담감과 걱정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을 하면 꼭 일어나듯이 실제 수능에서도 내가 걱정한 일들이 일어났다. 평소보다 실수도 잦고 운도 따라주지 않아, '물수능'임에도 3년간 받아온 수많은 모의고사 성적들에서 벗어난 최하점을 받은 것이다. '어찌 이토록 운이 없을 수 있을까?' 처음엔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참 힘들었다. 이를 더욱 괴롭게 했던 것은 '반대의 케이스'가 많았기 때문이다. 3년 간 받아보지 못한 성적을 처음으로 수능에서 받은 일명 '수능 대박'이 터진 친구들이 많이 등장했다. 평소의 실력이 어떻든 실전에서 못하면 끝인 것이라 결과를 승복해야 하는데, 어린 날의 나는 '운도 실력이다'라는 말을 쉽게 인정하기 싫었다. 


    나는 사실 운 따위는 바라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본인의 실력이 10이라면 운이 작용에 12가 발휘되는 것을 기대한다. 그런데 나는 12는커녕 제발 10만이라도 온전히 나타나기를 바라며 실력을 키우는 것에만 집중했다. 사실 나는 10이라는 실력이 실전에서 10이 그대로 나오도록 하는 '멘탈 관리 능력'에 더 집중을 했어야 했다. 나는 실력을 키운다는 이유로 산속 고시원에만 틀어박혔고, 실상은 실전 감각을 잊은 채 '쉐도우 복싱'만 했다. 마치 산에서는 호랑이도 때려잡을 만큼 맹연습을 하고 기세 좋게 나왔지만, 막상 링 위에 올라가서는 관중들의 환호에 압도되어 혼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버린 꼴이었다. 그렇게 재수를 한 결과는 10이라는 실력 중 고작 5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채 끝나버렸다. 만약 애매하게 8 정도의 실력만 보여줬더라면, '운이 나빴다'라고 자위하며 삼수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5 라니?... 이건 진짜 정말! 내 실력이 아닌데? 남들이 손가락질할 텐데? 내 자존심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운도 실력이다'를 인정하지 않으면 앞으로 평생 나의 삶은 '운'이라는 것에 휘둘리며, 스스로를 '운 없는 놈'으로 낙인찍으면서 살 것 같았다. 그냥 여기서 끊어버리는 게 낫겠다. 인정하자. 이전에는 운이라는 것을 철저히 베재하며 살아왔지만, 그놈의 운이라는 것을 나도 이용해 보기로 생각했다.


    운을 활용한다니? 그게 정말 되는 일일까? 나는 20살부터 어떻게 하면 운을 활용할 수 있을지 '운의 성질'에 대해 고민해보고 어떻게 인생에 적용해볼지 또 고민했다. 내가 경험을 통해 파악한 운의 성질은 간단했다. 

1) 운은 확률적으로 모든 사건에서 발생할 수 있다.

2) 간절하거나 집착할수록 운이 찾아오는 확률이 낮아지는 것 같았다.

운은 사건마다 비슷하게 작용을 하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사건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쉽게 말해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일을 시간이 허락하는 선에서 많이 하기로 한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데 꼭 필요한 것은 일에서 '간절함'을 한 스푼씩 빼는 것이다. 2번의 수능을 통해 겪은 것은 간절함이 곧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를 시간 투자의 관점에서 설명을 해보고자 한다. 나에게 10시간이라는 시간 있고, 수학을 80점을 받기 위해서는 2시간만 공부를 하면 된다. 그런데 100점을 맞아야겠다는 목표와 열정이 있다면 10시간을 전부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시험에는 운이 계속 작용한다. 운이 좋은 사람은 2시간만 공부해도 90점을 맞을 수 있는 반면 10시간을 공부한 친구가 운이 나쁘면 80점이나 90점을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원리를 적절히 활용해서 최대한 많은 일들에 시간을 적절히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대학교 생활을 할 때에도 남들은 학교 시험 하나에 온전히 집중할 때에 나는 학교 시험, 외부 시험, 과외, 봉사, 학생회 모두 적절히 시간을 분배하였고, 5개 중에 운이 터지면 최소 2개에서 많게는 모든 부분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도 했다. 이런 과정들을 10년간 끊임없이 반복하다 보면 운이 터지는 확률이 계속 올라갔고 잘 풀리는 일들이 생기면 그것은 계속 새로운 일이 되어 돌아왔다. 주변에서 보기에는 '운을 타고난 사람' 혹은 '하는 일마다 잘 풀리는 사람'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필사즉생 행생즉사'라는 말처럼 잘 풀리기를 바란다면 힘을 빼야 한다는 전략이 내 삶이 바닥을 쳤다고 생각하고 나서야 비로소 삶에 적용해볼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사실 나에게도 '타고난 재능'이 하나 있었다. 스스로 성장하는 능력을 타고난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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