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같지않은 MZ세대인 나
이게 증명사진이라고...?
MZ세대의 소비 트렌드 중 '다양성'과 '자기 맞춤형'이라는 두 가지 콘셉트를 모두 잡은 것이 있었다. 바로 '증명사진'이었다. 흔히, 아니 심지어 나조차 증명사진은 본디 동네 사진관에서 흰색 배경에 양쪽 귀를 다 들어낸 채 어색한 표정으로 찍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사진작가들이 고객의 개성을 잘 살려 다양한 배경에서 고객이 원하는 이미지를 연출해주어 증명사진을 찍어주는 곳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제출을 목적으로 하기보단 퍼스널 브랜딩, 프로필 사진, 개인 소장을 목적으로 '증명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솔직히 나도 유행이나 트렌드를 따라갈 관심이나 여유가 없는 사람 중 하나이기에 나이는 MZ이지만 MZ 같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고로 위와 같은 프로필 사진에도 당연히 별 생각이 없어서 '네이버 검색 이미지'에도 대충 폰으로 찍었던 사진 중 하나를 등록했었다.
나의 이런 모습을 MZ 중에서도 MZ다운 여자 친구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프로필 사진 겸 증명사진을 새로 찍어야 한다며 스튜디오를 예약해주었다. 여기서 찍은 걸로 네이버 사진과 브런치 사진을 바꾸라고 한다. 겸사겸사 나는 최근 핫한 증명사진도 몸소 경험해보고, 서른 기념으로 사진도 남기고, 나중에 사원증으로도 활용할 사진을 찍기로 했다. 스튜디오를 방문하니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분위기 3가지를 선택해달라고 했다.
담백한, 즐거운, 상큼한, 자연스러운, 쾌활한, 평화로운, 환한, 도시적인, 편안한, 특별한, 강렬한, 시원한, 서정적인, 투명한, 건강한, 몽환적인, 캐주얼한, 빈티지한, 깔끔한, 자유분방한, 고급스러운, 깨끗한, 고운, 싱그러운, 유쾌한, 달콤한, 시크한, 세련된, 핫한, 성숙한, 중후한, 잔잔한, 로맨틱한, 짙은, 발랄한, 명랑한, 무게감 있는, 개구진, 청초한, 사랑스러운, 시적인, 섹시한, 매혹적인, 순수한, 신비로운, 스포티한, 우아한, 선한, 맑은, 퇴폐적인, 부드러운, 다채로운, 중성의, 생기발랄한, 행복한, 은은한, 모던한, 클래식한... 등
첫 질문부터 굉장히 고민스러워졌다. 아마 선택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숨이 턱 막힐지도 모른다. 아마 본인에 대해 많이 고민해보고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바로 원하는 것들을 골라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이미지는 조금 복잡했다.
MZ세대이기에 자유로움은 있지만 전문가로서 신뢰감을 주면서도 너무 저렴해 보이진 않고 무게감을 가지면서도 부드럽지만 도시적인 느낌...?
너무 복잡한 것 같아서 '도시적인, 시크한, 신비로운'을 선택했다. 이후, 사진작가님과의 미팅을 가지게 되었다. 흔히 '퍼스널 컬러'라고 본인에게 잘 어울리는 색이나 톤이 있다고 한다. 글쎄 나는 이 또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작가님이 오늘의 의상과 이미지를 보면서 회색톤을 해보자고 하셨다. 원래 전문가의 말을 따라가면 반은 성공하는 것이기에 회색으로 선택을 했다. 그리고 10분 정도 3가지 자세에서의 촬영이 이루어졌다. 카메라 앞에 자주 서면 '카메라 마사지'를 받는다고 하지 않는가? 최근에 몇 번 서봤다고 점점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운 표정이 나오는 것 같다.(최근 유튜브는 표정이 너무 어색하고 얼굴이 경직되어 있어... 주변에서 못 나왔다고 ^^) 사진을 찍고 나면, 여러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장을 선택해야 한다. 여러 사진 중 최종 후보로 2가지 사진이 선택되었는데 한 장은 증명사진처럼 '무표정'으로 찍힌 사진이고, 다른 한 장은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사진이다. 옛날 '증명사진'의 감성을 가진 나는 당연히 전자를 선택했으나, 사진작가님은 무조건 후자로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셨다. 역시 또 전문가의 말은 믿어야 하기에 후자로 선택했고 막상 인화하고 나니 잘한 선택 같았다.
스튜디오에서는 '나의 첫 번째 기록'이라는 이름과 함께 사진을 이쁜 카세트에 담아주었다. 막상 찍고 보니 소장용으로도 찍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주기적으로 '나의 지금'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어떨까...? 내가 브런치에 글을 남기는 이유도 비슷하다. 나의 모습은 사진으로 남겨둘 수 있지만, 생각과 고민을 남겨둘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은 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