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준 Feb 18. 2023

약국에서 일어난 소소한(?) 일들

일상 기록

한 곳에서 오래 근무를 하게 되면 단골 환자들도 생기고, 처음 온 환자들과도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남들에게는 잘 털어놓지 못하는 건강 이야기도 하고, 세상 사는 어려움을 나누기도 하고, 자식 자랑이나 걱정을 들어준다. 물론 대형 약국이나 종합 병원은 환자도 워낙 많고 정신이 없어서 환자들과 오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렵다. 작은 약국도 물론 바쁘지만 상대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은 편이라서 큰 약국에서 일하다가 작은 약국(파트 근무)으로 옮겼다.


경청을 잘해서 그런지 남의 이야기를 꽤 잘 들어주는 편이다.

물론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기에 주야장천 들어줄 수는 없고, 적당히 대화를 매듭지으며 환자의 만족감과 업무적인 효율성을 잘 조율하려고 노력 중이다.


남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즉 상담자로서의 역할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자세는 '너무 몰입하지 말자'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공감을 할 줄 모르면 상담이라는 행위가 성사되기 힘들다. 그러나 공감 능력이 너무 크면 내담자의 이야기에 감정이 지속적으로 소모되어... 결국 '번아웃'에 빠지게 될 위험이 크다.

그래서 친구, 연인, 가족 간의 지속적인 하소연은 상대방에게 기분을 전염이 시키고 관계까지 악화시킬 수 있다.


의료계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특히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과 자주 마주하게 된다. 주니어 시절에는 대부분 직업에 대한 막연한 설렘과 차오르는 인류애로 성실히 일을 하지만... 실전에서 만나는 상상을 초월하는 진상들에 치이고 감정노동에 지쳐가면서 점점 로봇으로 변해간다.




근래에 약국에서 벌어진 일들 중 나의 마음을 동요시켰던 몇 가지 사건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어른스러운 아이]

7~8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한 손으로는 엄마를 끌고, 다른 한 손으로는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찾아왔다. 엄마는 아이 손에 이끌려오면서 눈이 풀려있었고 많이 아파 보였다. 처방전을 받아 약을 조제한 후에 복약지도를 위해 어머님을 불렀는데 아이가 카드를 들고 오더니 약을 달라고 했다.

"어머님께 약 설명을 드려야 하는데..."

"제가 전달해 드릴게요. 잘할 수 있어요."

"그러면 적어서 줄 테니 잠시만..."0

설명을 적어서 약과 함께 아이에게 약을 건네주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90도로 인사를 하면서 외쳤다.

"저희 어머니의 약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렇게 어린 나이에 기특하기도 하고 뭔가 마음이 뭉클했다.


[잉꼬부부의 이야기]

2년 넘게 약국에 다니신 70대 잉꼬부부가 있다. 두 분은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약을 타러 오시기 때문에 자주 뵈었고 항상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분들과도 종종 대화도 나누곤 했었다. 자식들이 무슨 일은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그리고 손주들 이야기까지...

어느 날 할아버지가 평소에는 받지 않던 위장약을 추가로 처방받으셨다.

"얼마 전부터 속이 계속 얹히고 더부룩해서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할머니 혼자 약국에 오셨다. 지난 2년간 혼자 오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에 의아해서 물어보았다.

"아버님과 함께 안 오시고 혼자 오셨네요?"

"우리 아저씨 아파요..."

하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셨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속이 안 좋은 것들이 너무 심해서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말기 암으로 진단을 받으셨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순간 뇌가 정지되어 차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감히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못했다. 게다가 췌장암이어서...

오랫동안 지켜온 노부부라서 그런지 내게도 꽤나 큰 충격이었다.

  

[과한 오지랖인가?]

내가 일하는 곳에는 외국인 손님들이 아주 많다 (이태원 주변). 외국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병원에서 처방을 받기가 번거로워서 약국을 자주 찾곤 한다. 그런데 영어를 하는 약사가 있다는 소문이 낫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더 많이 찾아오곤 한다. 아니면 친절해서?ㅎㅎ


한 외국인이 처방전을 들고 찾아왔다. 병원 밑에 약국에 가지 않고 약속이 있어서 이곳까지 찾아오게 된 것이다. 물론 대체조제가 가능한 약이었지만 재고가 없어서 조제를 해줄 수 없었다. 상태가 안 좋아 보였기에 대체 조제가 가능한 약국을 직접 찾아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주변에 오픈한 약국들 5~6 곳을 전화하면서 대체조제 가능 유무를 체크하였고, 그중 가능하다는 곳을 찾아 설명해 주고 포스트잇에 주소를 적어주었다.


하지만, 이 광경을 보면서 기다리던 손님이 "우리나라 사람부터 챙겨야지, 그냥 돌려보내면 되지 무슨 오지랖인지..." 하면서 가버렸다.


사실 오지랖맞는 소통도 안 되는 타국에서 외국인이 어떻게 약국마다 찾아다니면서 대체 조제를 할 것인가...?


앞으로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고민을 해보았다.

친절도 남에게 불편감을 주면 불필요한 일인가?

본인도 어려움을 겪을 때 누군가의 도움을 구하지 않을 것인가?

결론은 그냥 내 맘대로 하기로 했다. 그들도 그들 마음대로 행동하니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새치기를 하고, 상담이 길어지면 뒤에서 소리를 지르고, 몰래 물건을 가져간다...)



연재 중이던  '청소년 동기 부여 + 학습법 + 진로 고민 등' 관련 메거진이 출간 계약(2/18)을 하게 되면서 후속 연재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도 안 했는데

아쉽지만 좋은 내용이 듬뿍 담긴 책으로 만들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준 드림.








매거진의 이전글 한 직장에서 오래 못 버티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