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는 ‘가격 대비 성능 비율’을 의미하는 말이다.
과거에는 가성비가 현명한 소비자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 가격에 이 정도면 혜자다”, “완전 개이득이다”와 같은 표현이 유행하면서, 적은 비용으로 큰 만족을 얻는 것이 하나의 미덕이자 합리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금전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처럼, 시간 대비 성과 역시 가성비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요즘 많은 직장인들이 바라는 ‘적게 일하고 많이 벌자’는 삶 역시, 시간 혹은 노력 대비 더 큰 보상을 추구하는 확장된 형태의 가성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가성비’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서서히 덧입혀지기 시작했다.
“가성비만 따진다”, “싸구려만 찾는다”는 말은 지나치게 계산적인 태도나 가치 없는 소비로 비춰지며, 가성비의 긍정적인 의미를 흐리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명품 브랜드나 프리미엄 제품의 마케팅에서 촉발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단순한 효율보다 경험의 질, 개인의 취향과 감성을 중시하는 흐름 속에서,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라는 새로운 소비 개념까지 등장했다.
결국, 오늘날의 가성비는 더 이상 ‘합리적 소비’라는 긍정적 이미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때때로 감정의 빈곤함, 혹은 관계를 계산하는 태도로도 인식되며, 현대 소비자들의 정서적 가치관 변화를 반영하는 듯 하다.
나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가성비 인간이다.
금전적인 여유가 없던 시절, 합리적인 소비는 생존을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절약의 습관은 어느새 몸에 밴 생활 방식이 되었고, 지금도 내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그런 소비 방식은 단지 경제적인 선택이 아니라 심리적 안정과 만족감을 동시에 주는 행위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여전히 가성비와 가심비가 함께 충족될 때, 가장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소비가 된다고 느낀다. (참고로, 지금까지 내가 스스로 소비한 가장 고가의 물건은 60만 원짜리 갤럭시 탭이다.)
시간에 있어서도 나는 전형적인 가성비 인간이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남들보다 더 많은 일을 성취하기 위해 언제나 효율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해왔다. 그 결과, 서른 초반이라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학업과 커리어 모두에서 나름의 성과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점은, 금전적인 면에서는 ‘너무 아끼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지적을 종종 듣는 반면, 시간 관리와 자기계발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나에게 조언을 구하고 배우려는 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같은 ‘가성비’라는 기준이지만, 맥락에 따라 평가와 반응이 전혀 달라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합리성이 항상 같은 가치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 내가 가장 비효율적인... 즉 가성비 인간 답지 않게 했던 일이 무엇이었을까? 생각을 했을 때 책을 쓰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리고 참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