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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ihnK Jan 03. 2024

나는 초등교사를 그만두었다

12. 교대생 시절 우등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2

"초등교사가 되려고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교대 입학 면접 때 들었던 질문이다.


"교육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지는 일이라 생각하는데, 교육 중에서도 가장 기초의 교육을 담당하는 것이 초등교사라 정말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초등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미래의 이 나라를 이끌어갈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라면 정말 보람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면접관이 듣기 좋은 대답이라고 생각하여 한 말이기도 하지만 내가 말하면서도 참 맞는 말이지 않은가 생각했다. 실제로 교사로 부임하면서 이 대답이 줄곧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한 일인데.




아주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300명 중 130등 정도로 임용고사에 합격했다. 성적순으로 발령이 나는데 그 해에는 3월 1일 자에 약 150명 정도 발령이 났다. 나머지 미발령자들은 그 이후로 순차적으로 자리가 비는 학교로 발령이 나고, 정식 발령은 9월 1일 자에 또 한차례에 나는데 이때에 모두 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당시 나는 신규발령 통지를 받으면서, 난생처음 들어본 시골 동네를 가면서도, 그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3월 1일 자로 발령이 났다는 것은 그만큼 성적이 높았다는 의미였으므로 기분이 좋았다.




2월 마지막 주쯤, 학교에서 날짜를 정해 신규 발령자들을 소집했, 이내 관사를 배정받아 이사를 했다. 이것저것 일처리를 하다 보니 며칠이 훌쩍 지나고, 2월 마지막 날이 되었다. 관사에 이사 들어온 신규교사들끼리 잠시 한 집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도대체 개학 첫날에는 무엇을 해야 하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이었다. 어릴 때 내가 다니던 옛 학교와는 사뭇 달라졌으므로 기억에 의존해서도 안 되었다.


"일단은 자기 소개하고..."


"넌 뭐 할 거야?"


"청소해야 하나? 역할 분담?"


"수업은 해야 하는 거야? 안 해도 되는 거야? 무슨 교과 수업을 하는 거야?"


동학년 선생님들과는 잠깐 인사만 나눈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지나친 질문을 하기에는 어렵게 느껴졌다. 신규교사들끼리는 서로 물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아무런 사고 없이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도해야 했다.


교대 4년을 재학하며 배운 것은 과연 무엇인가. 졸업 평점 A학점의 우수한 성적이었는데. 가르쳐 주는 것은 모두 학습했는데 왜 개학 첫날 해야 할 일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가. 교육과정이라는 것은 시험을 볼 때 그렇게 열심히 외우면 뭐 하나, 실전에 도움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고, 기억도 전혀 나지 않았다.


아직도 내 첫 수업, 첫 시간을 잊지 못한다. 아이들 앞에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아이들에게 들키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눈앞이 캄캄한 그 상태. 내 손은 덜덜 떨렸다. 아이들은 내가 벌벌 떨며 횡설수설하는 것을 듣고,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소름이 등에 쫙 돋았지만 아닌 척, 쿨한 척했다. 몇몇 아이들은 짓궂게 장난을 치고 나의 말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이럴 땐 어떻게 집중하게 만들지? 장난이 심한 아이에게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 거지?


멘붕. 나 정도면 멘탈이 정말 강한 사람이라고 그동안 생각해 왔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아이들을 책임질 수 있을까? 수습 기간도 없이 인수인계도 없이 덜컥 3월 개학일에 얼굴도 몰랐던 아이들 25명을 마주했을 때를 잊지 못한다. 출석을 불러야 하는지, 오늘 결석한 아이는 어떻게 처리하는지, 나이스라는 것이 있다는데 그것은 어떻게 로그인하는 건지...


첫날, 첫 시간의 압박은 악몽이었다. 혼자만의 힘겨운 싸움이었다. 남들이 듣기에는 '그런 능력도 없는 자가 감히 교단에 서도 되는가?'로 느껴질 수도 있다. 탈이 약한 사람들은 이것을 쉽게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선생님들은 첫 날 아이들을 하교시킨 후 교실에서 혼자 눈물을 쏟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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