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by 이준

'좋은 사람'이란 무슨 의미일까.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되는 꿈, 어떤 사람은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는 꿈, 어떤 사람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꿈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물론 나에게도 꿈이 있다.


내 어릴 적 꿈은 과학자나 검사가 되는 것이었다. 요즘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어린 시절에는 많은 남자아이들이 과학자나 대통령, 검사, 경찰 등등의 꿈을 꾸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어린 남자아이들은 막연히 힘이 세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 보이는 직업이 멋있어 보였던 이유도 꿈을 정하는데 어느 정도 작용했던 것 같다. 아무튼 과학자와 검사로 시작된 나의 꿈은 대다수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중학교에 들어가 화려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나서 변천의 역사를 거치기 시작했다. 물론 꿈이 변경된 사유는 내 학업성적이 좋지 못해서가 아니라 더 높은 이상을 좇는다는 그럴듯한 대의명분으로 둔갑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나의 꿈이 변경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중요한 건 이제 곧 마흔을 앞둔 지금까지도 나는 아직 꿈을 꾼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나의 꿈은 무엇일까.


왠지 이상적이고 다소 막연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언제부턴가 나의 꿈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건 최근 몇 년 간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다만 좋은 사람에 대한 정의는 조금씩 변경되어 왔다.


지난 화요일 연가를 쓰고 아토피 때문에 부산에서 요양 중인 누나에게 다녀왔다. 누나에 건강이 염려되어 간 것도 있지만 모처럼 부산에 가서 휴양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때문에 부산에 도착해서 딱히 어디를 돌아다니지는 않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해운대 해변에서 누나의 건강 증진을 위한 달리기를 하면서 보냈다. 각종 병원 진료와 처방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달고 사는 아토피염이 매일 꾸준히 러닝을 한다면 개선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누나와 나의 판단에서였다. 공교롭게도 내가 본격적으로 러닝을 시작하고 배운 지 약 8개월 정도 차에 들어서고 있던 차라서 어느 정도 누나의 러닝 자세를 잡아주고 거리를 끌어줄 정도의 체력과 지식은 있었다.

부산에 머무는 총 3일 동안 우리는 총 3회의 러닝을 하였는데 첫째 날 누나의 상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갑자기 심하게 도진 아토피염이 누나의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시켜 놓은듯했다. 나중에 누나에게 병원에서 경미한 우울증 증상을 진단받았다는 말을 듣고 그 영문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내심 걱정되었지만 본인 심정은 오죽할까 싶어서 일부러 티를 내지는 않았는데 다행히 나의 우려와는 달리 누나는 둘째 날과 마지막 셋째 날에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놀랄 만큼 많은 변화를 보여주었다. 원래부터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 빠르게 멘탈을 회복할지는 몰랐다. 덕분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갈 수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고 나서 마음에 어떤 여운이 남겨져 있음이 느껴졌다. 정확하게 표현할 수도, 굳이 어떤 단어로 표현하고 싶지도 않은 어떤 따뜻함이 느껴졌다. 내가 한 일이 무슨 대단한 선행도 아니고 우리가 나눴던 시간이 영화 속 어떤 극적인 장면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너무 뜨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냉랭하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어떤 따스함이 나의 마음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큰 헌신이나 기부를 하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어떤 특출나거나 비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들임에는 틀림없지만 꼭 그런 일을 해야지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일까.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함께 살아갈 부모님이나 형제자매 혹은 많지는 않지만 주변 친구, 동료들이 있고 가정을 이룬 사람들에게는 먹여 살릴 자식들까지 존재한다. 하루하루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처리하며 돈을 벌고 밥을 챙겨 먹으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벅차다. 만약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 지역과 사회,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고 희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우리 사회 가장 보통의 사람들은 평생 단 한 번도 좋은 사람이 돼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것일까.


행복은 그렇게 먼 곳에 있지 않다는 말이 더 와닿는 오늘이다.


대단하고 비범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자신의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나 애정 어린 시선을 건넬 수 있고,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타인의 근심 어린 걱정에 진심 어린 경청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일상적인 순간 속에서도, 가장 수시로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상황 속에서도 기꺼이 자신의 애정 어린 세심함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기에 충분한 사람이 아닐까.


김장하 선생님께서 '우리 사회는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난다. 나는 어쩌면 좋은 아들, 좋은 동생이지도 않으면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였고, 좋은 사람이 아니면서도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비록 지금의 나에게는 사회를 위해 큰 공헌을 할 여력도 능력도 존재하지 않지만, 부디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항상 나의 언행을 되돌아보며 타인에게 상처가 되기보다는 용기와 위로가 될 수 있는 '가장 보통의 좋은사람'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바라본다.


2025.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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