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

by 이준

이 우주는 어떤 힘으로 계속 뻗어나가고 있는 것일까.

이 지구는 어떤 힘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우리 인간은 어떤 힘으로 매일 아침잠에서 깨어 삶을 연명하기 위해 먹고 일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누군가에게는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고 하는데, 죽지 못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어떤 힘이 우리를 이렇게 살아가게 하는 것일까.


레프 톨스토이는 자신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사람은 결국 사랑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인간은 돈을 위해서, 명예를 위해서 혹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지는 않지만

사랑을 위해서는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사랑에 대한 정의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은 방식으로, 셀 수도 없이 많이 이야기해오고 있다.

때로는 글로, 때로는 말로, 노래로, 연극으로, 영화로, 그림으로 혹은 눈빛이나 목소리로.

그래서 이제는 사랑하면 떠오르는 명사들이 더러 존재하기도 한다.

이처럼 세상에는 수많은 사랑이 존재하는데 과연 누가 감히 어떤 것은 사랑이고 어떤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오늘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랑의 힘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인간에게는 오감이 존재한다.

시각, 청각, 미각, 후각 그리고 촉각.

우리는 그 오감을 통해 세상을 느끼고 받아들인다. 그렇게 받아들인 감각은 때로 우리를 흥분시키고 기쁘게도 하지만 때로는 눈물짓게 하고 분노케하며 또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은 자연적으로 오감에서 느껴지는 감각 중에 기분이 좋아지고 편안해질 수 있는 감각을 얻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게 된다. 자신의 일생을 고통받기 위해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가 계속해서 좋은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라면, 결정적으로 쾌락이라는 감각이 사랑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요즘은 남녀 사이에 만남과 헤어짐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난다. 과거보다 이혼율이 올라가고 결혼과 출산의 비율이 낮아진 것이 사실이다. 물질이 풍요한 시대, 이 윤택하고 풍요로운 사회는 우리에게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우리를 매우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람으로 변질시키기도 했다.

물론 개중에 진정으로 결혼생활은 유지하기 어려운 사람들 또한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든 자신의 삶을 극도의 공포와 고통으로 몰아넣는 삶을 유지하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편하게 해주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또 나에게 달콤한 쾌락을 선사해 주는 그것이 사랑인 것일까.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예쁘고 잘생긴 연예인들, 잘 먹고 잘 사는 부자들과 같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외적으로 뛰어나거나 돈이 많은 사람들은 sns 등 각종 시각적 매체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뽐내기도 한다. 현대사회는 이처럼 쏟아지는 각종 오감적 자극들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이런 자극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다양해지고 광범위해지고 방대해졌다. 이것은 지금 이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이 시대가 주는 선물이고 흐름이기 때문에 그런 자극을 쫓으며 살아가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인 것일까.


인간이 맛있는 음식을 보고 식욕이 왕성해지는 것은 매우 인간적인 모습이다. 인간이 성적으로 매력적인 이성을 보고 성적 흥분을 느끼는 것도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리고 졸음이 몰려올 때 잠을 자고 싶은 욕구 또한 자연스러운 욕구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보통 인간에게 3대 욕구가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가 위에서 말한 생리적 욕구이고, 두 번째가 내 몸의 건강을 지키고 싶어 하는 안전욕구, 세 번째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사회적 욕구이다. 이 같은 욕구는 신체 건강한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욕구이다. 그러니까 이런 욕구가 있다는 것은 내가 인간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갖추고 있는 이러한 욕구를 과감하게 실현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삶인 것일까.


그런데 그와 같은 과감한 욕구 실현과 양립하기 어려운 가치가 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내 가족이 나에게 준 것과 같은 무한한 지지와 신뢰를 기반으로 한 조건 없는 희생인데 그런 사랑과 자신의 욕구가 충분하게 채워지는 삶은 양립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충분한 욕구 실현이 가져다주는 안락함, 성취감 그리고 그것들이 종국에 추구하게 될 쾌락과,

지지와 신뢰, 희생을 바탕으로 한 사랑 중에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욕구의 실현은 자극을 추구하고 자극의 끝은 쾌락이다.


우리는 흔히 쾌락의 끝을 마약이라고 본다. 그리고 마약 중에서 필로폰이라고 불리는 마약의 중독성이 가장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성의 경우 1회 필로폰 투약으로 얻는 쾌락의 강도가 성관계에서 오는 오르가슴의 1000배, 남성의 경우 10배에 달한다고 한다.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수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쾌락이 투약 횟수에 비례하여 계속해서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 닿으면 쾌락이 고통으로 뒤바뀐다고 한다. 그러니까 투약을 하다가 멈추면 극강의 고통이 몰려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양의 필로폰을 투약해야 하는데 그러다가 결국 약물 과다 투약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쾌락의 끝이 고통이자 죽음이라는 게 이 세상의 모순을 대변하는 듯하다. 결국 우리가 사랑과 욕구 사이에 갈등을 한다는 것이 사랑과 죽음을 놓고, 삶과 죽음을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욕구에, 자극에, 쾌락에, 죽음에 취약하게 태어났다. 그렇지만 신은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사랑을 주었다. 사랑은 우리에게 무한한 신뢰와 조건 없는 희생을 요구하지만 모든 인간에게는 끝이 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 유한한 삶을, 결국 자연 앞에 희생되는 이 삶을 고통이 아닌 고귀한 사랑으로 채워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 부모님들은 똥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존재를, 앞으로 십수 년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고 먹여살려야 하는 자식을 낳고도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난 그 사랑의 힘이 이 거대한 우주를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 힘이 나를 살아가게 한다.


2025. 6. 12.



—> 이준 작가가 연재중인 서스펜스 스릴러 단편소설이 궁금하다면

[연재 브런치북] 마트리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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