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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likehuh Nov 19. 2021

꿈을 파는 페스티벌, 투모로랜드

브랜드의 이해: 기말 레포트

#브랜드 연애의 기술


 음악 페스티벌은 사람들에게 즐거운 경험과 꿈을 파는 일을 한다. 노을이 지는 저녁에 다양한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모여 좋아하는 음악으로 하나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며칠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다. 성인이 된 이후 국내에서 열린 여러 개의 페스티벌들을 가보았지만, 매번 갈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마지막 공연이 끝날 때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사그라드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페스티벌 브랜드가 있는데,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는 “투모로랜드 (Tomorrowland)”다. 투모로랜드는 벨기에에서 2005년에 시작된 EDM 페스티벌인데, 다른 페스티벌과는 차별화되는 독특한 브랜딩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독특한 브랜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보통의(특색 없는) 페스티벌이 어떻게 브랜딩을 하는지를 먼저 이야기해야겠다. 투모로랜드 정도로 유명하고 세계적인 페스티벌이지만 내가 딱히 매력적으로 느끼지 않는 페스티벌 중 하나가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인데, 이름 그대로 ‘ULTRA’가 메인 콘셉트이다. 미국에서 시작되어서 그런지 페스티벌의 모든 것을 ‘최대 규모’로 진행하는 것을 콘셉트로 밀고 있다. 최고의 아티스트 라인업, 최대 규모 관중, 최대 규모의 공연 설비 등 정말 모든 것을 ‘월드 클래스’로 제작한다. 미국답게 프랜차이즈(?) 페스티벌도 많아서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 10여 개국의 나라에서 열리고 있다.

 규모로만 따지면 전 세계에서 1등 할 수 있는 이 페스티벌 브랜드가 나에게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들의 페스티벌에선 ‘꿈’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현장에 가보면 입이 떡 벌어지는 스케일에 한번 놀라고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DJ들이 여러 스테이지에서 동시에 음악을 틀고 있으니 행복하고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겠지만, 여기에서 이들이 자랑하는 거대한 규모의 무대와 화려한 아티스트 라인업을 뺀다면 이들이 들려주는 스토리는 금세 속 빈 강정이 되어버린다.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 이름에 맞게 ‘최대 규모’를 브랜드 메인 콘셉트로 잡았으니 만약 훗날 ‘슈퍼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이 등장한다면, 이들의 브랜드는 금세 당위성을 잃고 경쟁자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될 수도 있다.


 반면에 벨기에에서 시작된 투모로랜드는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처럼 세계적인 규모는 아니지만 나에게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페스티벌 브랜드다. 이들은 이름처럼 관객들에게 ‘환상의 세계’를 경험시켜주는 것을 콘셉트로 잡았는데, 이를 공연뿐만 아니라 시설물의 디자인, 음식, 티켓에까지 모두 녹여낸다. 평소 일상에 지친 관객들이 페스티벌이 진행되는 주말 동안은 ‘환상의 세계’에서 모든 것을 잊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고객 관점’의 브랜딩을 선보이는 것이다.

 투모로랜드는 매년 새로운 ‘이야기’를 페스티벌의 메인 테마로 선보이는데, 가장 최근에 열렸던 2019년의 경우 ‘The Book of Wisdom’이 제목이었다. 전반적인 스토리는 남녀가 미스터리한 도서관에서 하나의 책을 발견하고, 다른 세계로 이동해 자신들의 운명을 찾게 된다는 내용이다. 투모로랜드에서는 실제로 작가 SARAH와 협업해 페스티벌의 세계관과 스토리가 담긴 한 권의 책을 티켓 구매자들에게 보내주는데, 관객들은 페스티벌에 가기 전에 (트레일러 영상에서 등장했던 것과 똑같이 생긴) 열쇠로 티켓함을 열고 책을 읽으면서 직접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관객이 페스티벌에 도착하면 그 해의 콘셉트에 맞게 디자인된 무대 장치들과 여러 가지 체험 부스들을 마주하게 된다. 2019년의 경우 첫 공연 때 메인 스테이지의 Book of Wisdom이 펼쳐지며 새로운 세계에 도착한 관객들을 환영하는 내레이션이 울려 퍼지고, 마지막 공연이 끝날 때 내년을 기약하며 책이 덮이는 연출을 선보인다. 이런 디테일들이 관객들로 하여금 티켓부터 시작되었던 ‘환상의 세계’에 대한 경험을 쭉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 투모로랜드를 단지 음악 페스티벌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여행’으로 느끼도록 한다.


 투모로랜드의 이 독보적인 브랜딩 능력은 보통 그 해 아티스트 라인업의 ‘퀄리티’에 따라 티켓 판매량이 좌우되는 페스티벌 비즈니스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극복하고 마치 디즈니랜드처럼 고객들이 언제든지 새로운 경험을 위해 믿고 갈 수 있는 신뢰도를 부여해주었다. 덕분에 투모로랜드가 매년 판매하는 블라인드 티켓(사전 정보 없이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티켓)은 수분 안에 전부 매진되고 있다. 아쉽게도 나는 아직 투모로랜드에 가보지 못했지만 먼 한국에 있는 나조차도 인터넷으로 그들의 콘텐츠를 찾아보고, 관객들의 경험을 부러워하는 것을 보면 투모로랜드의 브랜딩이 정말 잘된 게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투모로랜드를 보면서 울트라 페스티벌의 브랜딩이 좀 더 약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는데, 울트라가 자신의 브랜드를 좀 더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는 좀 더 여러 콘텐츠를 개발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통일성 있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위에서는 서술하지 않았지만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도 ‘United We Dance’라는 슬로건을 사용하면서 댄스 뮤직으로 하나 되는, ‘화합’을 메인 메시지로 사용하고 있는데, 관객으로 갔을 당시 이를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경험했던 바로는 울트라 페스티벌에서 화합을 보여주기 위해 준비한 것이 여러 나라의 국기를 든 모델들이 공연장을 돌아다니는 것 정도였고, 공연을 보면서 주위 사람들과 하나 됨을 느낀 것은 따지고 보면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이 아니어도 느낄 수 있는 ‘음악 페스티벌 특유의’ 감정이기 때문에 ‘울트라’라는 페스티벌 브랜드가 나에게 주는 경험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트라 페스티벌에서는 좀 더 전 세계적인 축제임을 보여줄 수 있는 여러 가지 콘텐츠를 추가하면 좋을 것 같다. 예를 들면 타임존으로 묶인 여러 국가에서 동시에 페스티벌을 진행한다거나, 매년 하나의 나라를 콘셉트로 잡아 세계 여행을 하는 느낌의 무대 디자인을 선보일 수도 있겠다. 이전에도 온라인 홍보나 트레일러 영상에서는 세계적인 축제임을 잘 어필해왔으니 마지막으로 현장에서도 관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좀 더 디테일을 챙겨주면 지금보다 더 브랜드가 강력해질 것 같다.


 추가로 공연장이 큰 것, 비싼 아티스트들을 부르는 것과 같은 ‘초대형’ 콘셉트는 사실 울트라 페스티벌 입장에서 홍보하기 좋은 콘셉트이긴 하지만, 관객들이 울트라 페스티벌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기에는 너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 든다. 투모로랜드가 우리가 평생 경험해보지 못할 ‘환상의 세계’를 꿈으로 파는 것에 비하면 울트라의 초대형 규모는 사실 돈만 있으면 언제든 구현 가능한 (제작자의) 꿈처럼 느껴진달까. 훗날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제작되지 않는 이상 다른 페스티벌과 차별화되는 브랜드가 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별한 경험을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페스티벌 브랜드답게 좀 더 특별한 ‘울트라 페스티벌만의’ 경험을 제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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