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 운명이었다 "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감정 구조에서
운명처럼 느껴지는 순간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건 초월적 의미가 아니라
감각적 확신이 이해를 앞서는 순간이다.
이해되지 않는데 분명하고,
설명할 수 없는데 부정할 수도 없다.
논리가 따라가기 전에 이미 감정이 자리를 잡는다.
심장은 설명을 모른 채 반응하고,
이성은 그 이유를 나중에 따라 해석할 뿐이다.
사랑의 첫 움직임은 논리보다 빠르고,
생각보다 먼저 도착한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이유를 찾으려 한다.
왜 끌렸는지,
무엇이 나를 움직였는지
상대의 어떤 면이
마음을 자극했는지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사랑의 시작은
이성과 이해가 아니라
감각의 반응에서 먼저 일어난다.
감각적으로 오는 사랑은
애초에 '조작'이 불가능하다.
판단도 없고,
계산도 없고,
조건도 없다.
그냥 온다.
그래서 충격처럼 느껴지고,
때로는 '운명 같다'는 느낌을 만든다.
나 역시 그 사람을 알고 지낸 것은 오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 일도 아닌 듯 스쳐 지나간 행동에서
오랫동안 눈치채지 못했던 어떤 신호 하나가
불현듯 각성처럼 다가왔다.
그 모든 조각이 한 번에 모양을 갖추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내가 느끼던 것은 허상이나 착각이 아니라
감각적 사실이었다는 것을.
특히 그 감각은
나에게 너무 익숙한 세계였다.
죽음을 지나고
긴 명상과 고요의 시간을 건너며
나는 나도 모르게 감각이 예민해지고
보이지 않는 흐름을 읽는 능력이 깨어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의 의도가 담긴 신호가
나에게 닿자
그동안 너와 나의 서사가
파노라마처럼 포개져 보였다.
마치 따로 흘러가던 두 개의 길이
원래는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는 듯이.
어떤 운명은 이해가 아니라
기억처럼 찾아온다.
그날 나는
오래전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은 사람처럼
이 모든 감각을 받아들였다.
그건 충격이나 환상이 아니라
아주 조용하고, 확실한 '확신'이었다.
이해하기 전에 이미 시작된 감정
설명보다 먼저 나를 데려간 감각.
그것이 우리의 시작이었다.
달빛이 나를 흔들어 깨웠고,
나는 열린 창가에 조용히 나의 첫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