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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tip Oct 10. 2023

취향이 없는 것도 취향이라

연휴 동안 길게 여행을 다녀오는 학생을 위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무라카미 하루키 T>를 골랐다. 부제가 내가 사랑한 티셔츠이니 당연히 티셔츠 이야기일 테다. 우리는 쉬는 동안 좋아하는 옷이나 물건, 혹은 다른 어떤 것이라도 자신의 취향에 대해 생각해 오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떤 점을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소설보다는 그의 에세이를 그리고 하루키의 글보다 그의 수집벽을 사랑한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지 헌 LP를 모으고,  지금까지 모은 티셔츠가 한 트럭이 넘는 그런 그의 수집벽은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 각종 티셔츠가 가득한 그의 에세이는 '내 취향'에 맞춰 고른 것이다.


연휴 동안 아이들이 아프고 나도 덩달아 끙끙 앓아 가족 모두 피골이 상접한 채 시체처럼 누워 있었지만 그 와중에 나는 학생의 취향이 무엇일지 너무 궁금했다. 평소 수업하던 모습에 의하면 아주 깔끔하고 무채색의 옷을 좋아할 것 같은데 흠... 그건 알 수 없지. 알고 보니 헤비메탈 아티스트의 그림이 가득한 옷을 좋아할 수 도 있을 것이고, 그것도 아니면 중학생이니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의 넘버가 새겨진 유니폼을 사랑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니면 걸그룹 포토카드? 아니다. 만약 옷이 아니라면?  문구류나 여행에서 사 온 각종 기념품을 보여줄 수도 있겠지?


드디어 연휴가 끝나고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일요일 밤 수업시간이 다가왔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어떤 물건을 보여줄 거냐고 기대 가득한 눈빛을 보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자신은 취향이 없다는 거였다.


엇.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 취향이 없을 리 없다고 생각한 취향주의자 선생은 노트북을 켜서 무신사에 접속했다. 그리고 세상에 취향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학생에게 힘주어 말한 뒤 스크롤을 내리며 이렇게 많은 옷 중에 너의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옷은 없을 거라 확언했다.


30분을 넘게 꼼꼼히 ( 선생의 기대에 부흥하려 애써주며) 모든 옷을 본 학생은 딱 잘라 말했다. 자신은 아무거나 입을 수 있다는 것. 딱히 마음에 드는 것도 싫은 것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길 자기는 사람도 물건도 너무 좋고, 싫은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날의 글은 결국 무라카미 하루키가 티셔츠를 모은 것은 이해가 안 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겠으며 앞으로 본인이 마음에 드는 옷이 생기면 좋을 것도 같다는 내용의 글을 쓰고 마무리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행복한 쪽으로 결론을 내리는 법일까. 취향이 없는 것도 취향이니까 받아들이자며 결국 무취도 취향으로 편입해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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