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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tip Oct 12. 2023

남편의 플레이리스트가 수상해

남편은 아침에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걸 즐긴다. 결혼식 이후 지금까지 항상 일어나면 음악을 틀어 가족을 깨운다. 


사실 지난 10년간 그의 플레이리스트는 나를 힘들게 했다. 


신해철, 박완규, 장기하, 김경호, 김정민 등등 이름만 들어도 그가 어떤 음악을 사랑하는지 다들 눈치챘을 듯하다. 내가 이 가수들을 싫어한다는 건 아니다. 굳이 아침에 '날아라 병아리',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천년의 사랑'을 들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또 하나가 있다. 이 노래와 함께 늘 틀었던 노래는 라디오로 치면 오프닝 뮤직 같은 것. 바로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이다. 이불속에서 뒤척이며 이렇게 웅장한 노래를 아침부터 들어야 하는지 진심으로 그 이유를 묻곤 했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록발라드도 오케이이지만, 찌뿌둥한 아침에 들으면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다. 그런 날에는 내 눈치를 슬쩍 보고 김흥국 아저씨의 '호랑나비'를 튼 날도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내가 김흥국 아저씨의 '호랑나비'가 싫다는 건 아니고, 꼭 아침에? 들어야 하냐는 거다. 아이들과 함께 호랑나비춤을 추고 있는 그를 볼 때면 결혼 전엔 이런 건 약속에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침에 어떤 음악을 듣느냐에 따라 하루종일 흥얼거리는 노래가 선정된다고 믿는 나로서는 조금 더 아침스러운 노래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내가 원하는 노래들, 예를 들어 폴킴, 잔잔한 클래식, 상콤한 아이유나 악뮤를 플레이 리스트에 넣어두고 그 음악을 틀어달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그의 플레이리스트가 수상하다. 한결같았던 남편의 플레이 리스트가 조금씩 변하더니 급기야 최근에 스스로 폴킴의 노래를 틀어재끼기 시작했다. 폴킴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노래가 그 노래가 같다. 고음이 없어 밍숭 하다(남편 기준으로는 김경호정도는 되야 고음이기에)는 표현을 거침없이 날리곤 했는데, 아니 이런! 폴킴을 튼다고? 최근에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지 물어보기도 하고, 실수로 튼 건지 확인도 해봤지만 결국 그가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인 선곡임을 알게 되었다. 


하루는 쇼팽의 발라드 모음곡을 튼 적도 있다. 폴킴과 쇼팽. 그동안 그의 뇌구조에 0%를 차지했던 것들의 지분이 늘어난 것이다. 나와 오래 살다 보니 자신도 바뀐 것 같다는데 진짜일까. 


가을이 와서 그런 건지, 마흔이 넘어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의 비율이 바뀔 시기가 되어가는 건지. 


아무튼 그의 플레이리스트의 대변신을 두 손 들고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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