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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tip Oct 16. 2023

딸이 설거지하는 '꼴' 은 못 보겠다

오늘도 급히 수영을 나가는 아들에게 분리수거할 상자들과 음식물 쓰레기를 건넸다. 쓰레기장을 지나 수영장을 가게 되는 코스라 매번 이렇게 부탁을 하곤 한다. 다행히 아들은 집안일을 좋아하고 이렇게 힘든(?) 일을 하면 엄마의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이 드는지 얼굴도 뿌듯함이 묻어 나온다. 


이렇게 오빠가 집안일을 하며 엄마에게 칭찬을 받기 시작하자 딸도 그 칭찬을 원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딸이 원한 집안일은 설거지. 매번 엄마가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고, 오빠도 간단한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으니 본인도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설거지. 고작 9살이 된 딸이 설거지를 한다고 나서자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던 설거지라는 일의 상징성이 떠올랐다. 나도 어릴 적 엄마를 따라 설거지를 하고 싶어 했었다. 그럴 때마다 결혼하면 싫어도 하게 될 거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명절 때마다 엄마와 작은 이모들만 하루종일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여자어른이라면 응당 이래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결혼 후 시댁에 간 첫날. 설거지라는 행위가 가진 큰 의미를 알게 되었더랬다. 


설거지는 단순히 그릇을 닦는 그 이상의 행위다. 어떤 밥상에서 나온 설거지냐에 따라 설거지는 행복하기도 하고 고통이 되기도 하는 일이다. 


아직은 딸이 부엌 앞에서 설거지를 하기엔 키가 작다는 이유로 미루고 있지만 남편과 아들의 설거지와 딸의 설거지가 왜 다르게 다가오는 것일까. 


오늘도 설거지를 하겠다는 딸에게 신발정리를 맡기고 이렇게 글을 써본다. 내 마음에 응어리진 무언가를 풀지 못한 나의 숙제를 괜한 설거지에 화풀이하고 딸에게 확대시키는 건 아닌가 하여.  


그래. 솔직해지자. 딸이 설거지하는 꼴은 못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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