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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tip Nov 27. 2023

'1분'이라도 내 시간이 필요해

심호흡을 했었지

멍하니 있는 시간엔 글도 쓰지 않고, 핸드폰도 보지 않고, 음악도 듣지 않는다. 집에서 가장 볕이 좋은 자리에 앉아있는다. 발을 꼼지락 거린다. 손을 보기도 한다. 손톱이 많이 길었네 생각하며 손톱깎기로 딸깍 딸깍 손톱을 깎아낸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다시 안방으로 가본다. 잠은 오지 않지만 눈을 감고 있으면 어제 읽었던 책의 내용이 떠오른다. 백수린 작가의 '여름의 빌라' 몇 페이지를 읽었는데 피나 바우쉬의 제목을 차용한 글이 있어 반가웠었어. 이런 생각들을 하며 뒹굴 뒹굴 거린다.




아직도 악몽을 꾼다. 생방송 시간에 늦어 방송이 펑크 나는 일. 출연자 전화연결이 안 되어 동동거리는 내 모습. 어제 써놓은 원고를 출력해 놨는데 갑자기 일어나 보니 종이가 모두 사라진 세상. 디제이가 목소리가 안 나온다며 부스 안에서 목을 잡고 구역질을 한다. 부스 안으로 연결되는 주조정실 미니 마이크 버튼을 미친 듯이 누르며 나도 소리를 질러 보지만 내 성대도 망가졌다. 꿈이다.


연애보다 원고 쓰는 게 좋았던 날들이 있었는데. 분초를 다투는 생방송은 어느 순간 돌덩이가 되어 내 어깨를 짓눌렀다. 그땐 숨통이라도 트이게 해 보려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화장실 창가에 앉아 잠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창가에 앉아 있던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노트북 모니터에 한 글자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온몸으로 쉼의 의미를 깨달았던 건 라오스에서다. 의도하지 않게 멍하니 있던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무거웠던 마음이 하나둘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일부러 시간을 내지 않으면 내 일상에 '나를 위한 시간'이란 건 죽어다 깨도 없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긴장을 풀고 그 무엇에도 쫓기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필사적으로 그걸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굳이 하루의 루틴에 '멍 리기'를 욱여넣었다. 처음엔 좁디좁은 틈새로 겨우 밀어 넣었던 나만의 루틴이 조금씩 쌓이다 보니 아이들도 그 시간에 익숙해져 갔다. 10년 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그 1분. 천천히 심호흡하며 시작한 그 60초가  없었더라면 아직 나는 갈팡질팡 하고 있을 것이다.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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