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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tip Nov 28. 2023

'조명' 한 번 꺼볼까요

집안의 조명을 다 끈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창밖의 변화를 최대한 느낀다.

긴장이 스르르 풀어진다.

사진으로 찍어놓은 듯 변하지 않는 하늘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햇빛은 계속 변한다. 강했다가 사그라들었다가 구름이 지나가면 옅어진다.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듣는다. 눈이 내리면 하염없이 눈을 본다. 집이 어두우니 밖이 더 잘 보인다. 구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빗물이 어떤 모양으로 떨어지는지, 눈은 얼마나 쌓여가는지.

계속 보다 보면 진심으로 좋은 마음이 우러나온다.


인위적인 불빛이 없는 상태가 되면 신기하게 식사 속도도 느려진다. 느릿느릿 먹다 보면 음식재료의 맛도 다른 때 보다 더 잘 느끼게 된다. 새로운 음식이 아닌데 좋아하는 음식이 생기고, 맘에 드는 식재료를 발견할 수 있다. 생각보다 빨리 배부르다. 멈출 수 있다. 어느 정도 양이 차야 포만감을 느끼는지 정확히 알게 된다. 먹고 싶은 속도로 밥을 먹는다는 건 나를 알게 되는 과정이다.


이렇게 있다가 밖으로 나가면 평소 느꼈던 것보다 햇빛이 강하게 느껴진다. 태양의 존재가 오롯이 전해진다. 밝고 뜨거운 빛이 지구를 감싸고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밤은 반대다. 집에서 최소한의 조명으로 있다가 산책을 나가면 생각보다 밤은 별로 어둡지 않다. 밤은 늘 이 정도로 어두웠으니까. 그래야 사람을 재울 수 있는 거니까. 내일을 준비할 수 있으니까.  


오늘 아침도 분주했다. 아이들을 깨우느라 신나는 음악도 틀었고, 간단한 식사도 준비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운동을 하고 올 참이다. 나갈 준비를 하느라 방마다 켜놓은 불.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재빨리 집안을 전체소등한다.


땀이 흠뻑 젖은 채로 집으로 돌아왔을 땐 조금 느린 아침을 맞이하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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