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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tip Dec 27. 2023

이 '곤약'같은 시간

무색무취,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


잠시 쉬고 있다 보면 이 시간이 '곤약'같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보면 손예진이 오래된 남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 만나는 게 곤약 같다"는 이유로 헤어진 그들. 그 장면이 떠오른다.  


아마 남자친구는 나중에 깨달았겠지. 본인이 선언한 그 밋밋한 관계 덕분에 손예진이 발악할 수 있었다는 걸.


곤약 같은 시간은 감정을 정리 하기에 참 좋은 때다. 숨 가쁘게 달려오다 갑자기 멈춰 서면 심장 박동은 여전히 빠르지만 몸 전체는 붕 뜬 무중력의 기분이다. 그 절정의 순간이 지나면 몸과 마음이 흐물흐물해지는, 나른한 때가 온다.


서서히 멈춰섰건, 급정거를 했던간에 그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내 마음이 어떤지 모른채 계속 앞으로 걸어갈 수는 없으니까.


냉정과 열정의 비율이 어느 정도 섞여야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양손에 그 둘을 올려놓고 충분히 저울질하고 싶다. 그렇게 연습하다 보면 예전보다는 스스로 더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감정의 정리가 느린 사람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러니 이별을 하고도, 심하게 혼나고 나서도 당시에는 너무 멀쩡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슬프지 않아 너무 놀랐다. 남들이 걱정할 만큼.


하지만 상실의 슬픔은 다른 사람보다 늦게 몰려왔다. 한참 후에야 혼나면서 아무 말도 못 했던 모습이 떠오르는 걸 발견했다. 이렇게 밀려온 감정때문에 후폭풍이 너무 커 일상이 휘청일정도였다.


나는 상황에 압도되어 감정이 뒤늦게 따라오는구나.


오늘도 시공간이 멈춘듯한 시간에  나도 모르게 숨어있는 감정이 없는지 살핀다. 조금은 느리게 따라오는 마음을 기다려주기 위해  이 곤약 같은 시간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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