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이 도시에 까마귀가 날아다녔다. 떼를 지어 앉아있는 게 보였다. 한 번은 신호대기에 걸려 정지선에 차를 세우고 있는데 까마귀가 도로 한가운데 날아 앉았다. 그리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죽은 쥐를 물었다. 고개를 돌려 석화를 본 후 까마귀는 자리를 떠났다. 하나는 죽은 채, 하나는 살아서, 하늘을 날고 있었다. 죽어서도 하늘을 날아가는 쥐.
벌써 반년이나 같은 자리에서 노래를 불러왔다. 한 번도 만족하지 못한 노래를 부르며 그녀는 가장 충족한 행위를 하고 싶었다. 그리곤 까마귀를 떠올렸다. 까마귀의 입에 대롱대롱 매달린 쥐를 생각하면 석화는 괜히 통쾌했다. 그날 이후 그녀는 같은 곳에서 신호대기를 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허리 아래가 서늘했고 근질거렸다.
어젯밤. 석화는 대기실 책상을 정리하다 뭔가에 찔렸다. 너무 아파 눈물이 핑 돌았다. 데구루루 구르는 소리를 따라 의자밑을 헤매는데 연필이 보여 당연히 연필심에 찔린 줄 알았다. 오른손 엄지손가락. 괜찮은 줄 알았는데 점점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밤새 통증에 시달려 한숨도 못 자고 일어났는데 어제보다 더 부풀어 이젠 구부리기도 힘들었다.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는데 의사는 갑자기 자기의 손을 보여줄 테니 가까이 오라고 했다. 본인도 어릴 때 연필심에 찔렸는데 연필심은 본래 잘 부서지는 성질이며, 보통의 연필심이라면 흡수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쩌면 피부에는 일종의 연필문신 같은 게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문신이라는 말에 석화는 솔깃했다. 몸 어딘가에 굿굿하게 자리 잡은 증표 같은 걸 원했을까.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손가락 안에 누가 봐도 분명한 조그마한 점이 찍혀있다. 의사는 생각보다 깊이 박혔다며 혀를 끌끌 찼다. 간단한 수술을 해서 빼내야 한다며 혹시 질문이 있는지 물었다. 석화는 화면을 보며 저기 박힌 저걸 빼내면 연필 문신은 생기지 않는건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