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구름 속을 거닐고 있다. 알싸한 공기를 가로질러 저 멀리 보이는 어쩌면 늘 생각해 왔던 벽돌집으로 천천히 걸었다. 아주 자그마한 창문이 있는 집.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집 안으로 발을 내딛는다.
이미 차려진 식탁 위에는 하얀 찻잔에 따뜻한 홍차가 내려져 있고 어디에선가 빵 굽는 냄새가 난다.
허기지진 않았지만 굶주린 마음은 이미 포만하다.
그분일까.
이제야 심장이 규칙적으로 뛴다. 언제 터질지 몰라, 아니 언제 멈출지 몰라 불안했던 내 심장이 여기에 와서야 일정하게 할 일을 한다.
십 년 전. 우리는 마지막 수업을 몰래 빼먹고 버스를 탔다. 막대 사탕을 입안에 돌려가며 말도 안 되는 농담을 지껄였다. 가을을 맞이한 늦은 오후. 은주와 나는 한없이 걸었고 어느 담벼락에 기대어 발로 땅을 툭툭 치며 또 한 번 우스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곤 이제 막 물든 단풍을 하나씩 떼어 의미 없이 손에 올려서는 다시 잡았다.
핑크빛 노을이 지기 시작할 즈음. 은주는 내 손을 잡고 자신의 배를 문질렀다. 막 봉긋해진 배의 의미를 알기엔 나는 너무 서툴렀다. 그리곤 한참 뒤 휘둥그레 눈이 커진 나를 보며 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입에 손을 갖다 댔다. 영원히 간직해야 할 일이었다.
간직만 하면 될 일인 줄 알았던 소녀의 순진한 생각은 정확히 빗나갔다. 마음에 한 방울 스며들었던 핑크빛 노을은 서서히 뭉쳐 찐득해진 핏덩이가 되었다.
어떠한 음성도 미세한 신호도 없는 고요가 나를 감싼다. 구름에 가려져 있던 빛이 작은 창을 뚫고 들어온다. 그리고 나를 관통한다.
그분일까.
관통한 빛은 핏덩이를 서서히 녹이고 입을 열 때마다 울컥울컥 조각이 되어 나온다.
아주 조심스럽게 2층 예배당을 내려와 면류관을 바라본다.
이제야 십자가 앞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