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29살쯤인가. 일상이 꼬여버렸다. 모태신앙이던 그녀는 매번 교회에 가서 죄를 고하고 사도신경을 외우며 신앙을 고백하곤 했었다. 그런 일련의 속죄 과정을 거치고 나면 디톡스를 하듯 정신이 맑아지고 몸도 가뿐해졌다. 그리곤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던 것은 사도신경 덕분이라고 생각해 왔다. 어차피 태초의 인간도 에덴동산에서 죄를 짓지 않았는가. 우리는 죄인의 후손이라는 사실에 그녀는 항상 안도했다. 신을 모욕한 아담과 하와에 비하면 그녀의 죄는 매우 보잘것없었다. 무단횡단 같은 사사로운 위법행위부터 벌써 백번, 천 번도 넘게 마음속으로 죽이고 살린 그 부장새끼까지.
사도신경은 실오라기 같은 속죄의 끈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겨버렸다. 그녀가 어릴 적 암송대회에서 상을 탄 이후로 줄곧 숨 쉬듯 내뱉은 사도신경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시작했지만, 그녀가 29살 되던 해 번역이 바뀌었고, 새 번역은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라고 말해야 했다. 천상유수로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 어려워지니 입을 꾹 다물게 되었다. 속으로 옛날에 했던 고백을 하려 했으나 다른 신도들의 유창한 새 번역 신앙고백에 밀려 결국 입도 다물게 되고 마음도 접게 되었다.
새로운 버전은 아무리 외워도 입에 붙지 않았다. 보고 읽어도 더듬거리게 되고 안 보면 더더욱 입도 뗴지 못했다. 그녀는 기가 막혔다. 어제도 오늘도 그녀를 닦달했고, 내일도 역시 그녀를 피폐하게 만들 그 부장이란 작자를 향해 저주를 퍼부어야 하는데 제대로 된 속죄를 할 수 없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녀의 유일한 도피는 점심시간에 나가 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 슬쩍 휴지를 집어오는 것이었다. 가방에 휴지가 가득 찰 때마다 왠지 모르게 그녀는 숨통이 트였다.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당연하듯이 시작된 부장의 잔소리. 그녀는 창밖을 보았다. 앙상하게 남은 나뭇가지도 흔들릴 만큼 센 겨울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녀는 가방을 집어 들고 밖으로 나왔다.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버리고 가방에 가득 찬 휴지를 한 장 한 장 날려 보냈다.
때마침 그녀의 입에서 고백이 흘러나왔다. 바람소리에 흩날려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그것은 새로운 신앙 고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