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어제 짐을 들어다 준 소녀다. 겨우 잠든것 같은데 아침 먹을 시간인가보다. 정원에 마련된 간이 식탁에 털썩 앉자,어제 밤에 잠을 잘 못잤냐며 매니저가 눈으로 묻는다.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더니 비가 그치고 나자 바람이 불었다고, 처음 듣는 바람소리에 잠을 못잤다고, 나는 우스개 소리로 한국바람과 캄보디아 바람은 소리도 다르다며 빵을 한조각 집어들었다.
매니저가 내 말을 듣더니 따라 웃으며 말했다. 바람소리가 아닐 수도 있어요. 알다시피 이 땅에선 슬픈일이 있었잖아요. 그 어느 누구도 어제와 같은 밤은 잠을 이루기 쉽지 않습니다. 위로받지 못한 영혼들의 소리겠지요.
슬픔. 그래. 어제 밤새 건물 안팎을 가득 채운 짙은 중압감은 애통하는 자들의 것이었다. 씨엠립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전해져 온 진하고 진한 아픔의 기색이었다.
매니저의 말을 듣고 나는 앙코르 왓트를 구경하는 대신 씨엠립 시내를 천천히 걷기로 했다. 붉은 흙이 날리는 골목 골목을 유심히 보았다. 누군가 이 땅 아래에서 고통스러워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나를 원망했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그 땅을 밟으며 기도하기로 마음먹었다. 가다가 가다가 고운 흙을 발견하고 한움큼을 쥐고 기도를 하고 다시 흩뿌렸다. 내 방식의 애도였다. 낯선 이방인이 뭘 알겠냐만은 어제 밤 나에게 들려주었던 당신들의 사무치는 슬픔은 이제는 잊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부터 저기까지 자전거로 다니면 하루만에 본다는 씨엠립 시내를 걷기로 한 건 잘 한 일이었다. 거리에서 지나친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똑똑 물 떨어지는 소리와 조르르 흐르던 눈물을 생각했다. 그 눈물이 고인 길거리를 걷기로 한 건 그러니까 정말로 좋은 선택이었다.
다 안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위로가 보태지고, 기도가 전해지면 그래도 살만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녹초가 되어 호텔에 돌아온 나에게 매니저는 그저 물한잔을 따라주었다. 아침에 자기가 한 말 때문에 괜히 출장을 더 힘들게 했다고 한번 더 미안해 했다. 모르고 떠났다면 그런 나를 더 미워하게 되었을 거라고 답했다. 그리고 걱정말라고 오늘 밤 저녁 시골로 떠나기 전 맛있는 식사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가슴에 손을 얹으며 진심으로 안도하는 매니저를 뒤로 하고 나는 잠깐 눈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