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유화를 배우던 날.
붓세척통에 페인팅오일을 담뿍 담았는데 그림을 그리기 전 준비의식처럼 느껴져 신성했다. 학교 다닐 때는 수채화만 접했던 터라 더 신선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수채화는 한번 실수하면 거의 대부분 돌이킬 수없지만 유화는 좀 달랐다. 한번 붓칠을 잘못해도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덧칠하면 더 좋은 그림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덧칠을 할 수 있다는 건 움츠렸던 마음에 기지개를 켤 수 있게 하는 마법 같은 거다. 과감히 색을 섞어보기도 하고 마음껏 하얀캐버스에 물감을 얹을 수 있다.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붓질은 더욱 용감해진다. 그리고 예상치도 못한 작품이 나온다.
유화그림전시회를 가면 최대한 가까이 가서 뚫어지게 쳐다보게 된다. 세기의 작품도 한 번에 칠해지진 않았을 텐데 도대체 몇 번을 덧칠했을지, 어떤 붓질을 했는지 너무 궁금해진다.
처음 가본 유화 전은 반고흐전시회였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했는데 마침 직장이 홍대여서 매일매일 전시첫날부터 끝날까지 가서 봤던 기억이 난다.
고흐의 그림은 참 동화적이다. 붓칠은 강렬하지만 난 그의 노란색을 보면서 동심을 떠올렸다. 고흐를 깊이깊이 마음에 담았는지 처음 유화를 배울 땐 나도 모르게 노란색을 많이 썼었다.
그리고 식상하게도 고흐의 붓칠을 따라 했다. 그렇게 나는 고흐를 따라 하다 물감이 뭉개지는 순간에 매료되었다. 거친 질감을 나타내려다 물감을 눌러 바로 휙휙 캔버스에 얹는데 그때 붓끝에서 손끝으로 전해지는 유화물감의 눅진한 느낌이 좋았다.
물감을 짜고 붓으로 누르고 뭉개고 기름으로 붓을씻어내고 그 기름냄새와 커피 향이 뒤섞인 작업실에 앉아 내가 실수한 부분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종교적인 시간이었다. 내 결점을 바로잡으려면 나는 실수를 직시해야 했고 온몸으로 그걸 받아들이는 시간이 꼭 있어야 했다. 나의 부주의함이 건조되어야 새로운 물감을 덧칠할 수 있으니 기다림은 필수였다.
그리고 이 시간 동안 아마 나는 한 세 뼘쯤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