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이 '코지부'라고 부르며 언제 어디든, 심지어 마흔을 앞둔 지금도 가지고 있는, 그 인형을 평생 끼고 사는 동안 나는 인형을 직접 사거나 인형으로 인해 뭔가 안정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도대체 인형은 어디에 쓰는 것일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무엇도 떠오르지 않는다. 남들이 인형을 안고 잔다기에 한번(?) 흉내 내보기는 했으나 글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대신 난 로봇장난감을 좋아했다. 조립로봇은 이리저리 여러 모양으로 바뀌기도 하고 조립하면서 느끼는 희열도 있었다. 차라리 잠이 오길 기다리며 로봇을 변신시키면 졸음이 왔던 기억이 난다.
결혼 후 아이들이 태어났는데 두 명 모두 인형을 끔찍이도 좋아한다. 인형을 안고 자기도 하고 마트에서 인형을 사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그때마다 이 두 아이의 심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로서 정말 힘들지만 아이기도 하고 그래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가끔 사줄 때도 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인형에서 그 어떤 감정의 추출물도 뽑아내지 못한 인간이 바로 나라는 소리다. 하지만 살다 보면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지난주였나. 간호팀에서 주사를 맞는 환자들을 위해 인형을 좀 갖다 놓으면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선생님 한분이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인형을 잡고 있었는데 꽤(?) 심리적 안정감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하시곤 인형을 놔야 한다는 명분이 분명해졌다. 주사를 맞을 때 인형을 안는다? 그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나는 그저 다른 분들이 그렇다면 그런가 보다 하고 따라갈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막내 간호선생님이 다람쥐를 닮은 인형을 가져오셨는데 어 이것 봐라? 주사실에 가져다 놓으니 뭔가 분위기가 좋았다. 그리고 그 인형을 안고 주사베드에 누워보았는데 이럴 수가. 마음이 포근해지면서 눈을 딱 감고 주사를 맞을 수 있겠다는 좁쌀만 한 용기가 생긱는게 아닌가?
그리하여 마흔을 넘겨 나는 인형을 안으며 처음으로 '아이 좋아'라는 감정을 느껴버렸다. 그리고 다람쥐 인형을 안고 있다가 문득 아이들 몰래 버리려고 했던( 왜냐면 집에 인형이 정말 많으니까 ) 조그마한 오리 인형이 가방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오리인형을 꺼내 다른 주사실에도 소심하게 놓아보았는데 노란색 오리인형이 앉아있으니 주사실에 꽤 훈훈한 분위기가 돌았다.
곱게 앉아있는 다람쥐와 오리를 보며 나는 절대 이럴 리 없다는 그런 호언장담은 앞으로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이렇게 내가 인형예찬을 하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