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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tip May 14. 2023

욕심을 낼 거야

2023. 5.12 금요일 SSG 랜더스와 한화의 경기.

6시 반에 시작한 경기가 8시쯤 되니 7회 초로 달려가고 있다. 만년 꼴찌라는 한화가 처음부터 선전을 했다. 맞은편 한화응원단은 SSG홈그라운드의 응원을 꺾을 기세로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이제는 양 팀 관중 모두가 기립했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경기장의 열기는 최고조로 이를 때쯤 나는 문학경기장을 빠져나왔다.  


배터리가 8%뿐이다. 빨간불이 들어온 핸드폰으로 택시를 불렀는데 택시 아저씨와 약속 장소가 엇갈렸는지 택시콜을 취소해 달라는 통화를 마지막으로 전화기가 꺼졌다.

내 앞으로 수많은 택시가 지나가는데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잡히질 않는다. 망했다. 아까 전화기가 꺼지기 전이 9시 15분쯤이었으니까 15분 안에 도착해야 북클럽을 시작할 수 있는데.


경기장 너머로 계속해서 환호성이 들리는데 내 마음은 점점 초초해져만 간다. 고개를 쭉 내밀어 멀리까지 내다보니 왼편에 맥도널드가 보였다. 가게 불빛 아래에 서있으면 눈에 잘 띌까 해서 뜀박질을 했다. 가게 앞 가로등 아래서 열심히 손을 흔든 지 좀 됐을 때 택시 한 대가 내 앞에 섰다.


"핸드폰이 꺼지니 택시도 잡을 수가 없네요. 너무 감사합니다." 목적지를 말하기도 전에 고맙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지나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하도 열심히 손을 흔들길래 브레이크 밟았어요, 야구 보러 오셨나 봐?"

"네, 가족들하고 다 같이 야구 보러 왔는데 저는 북클럽을 해야 해서 먼저 나왔어요."


아직까지 가쁜 숨을 들이쉬며 말하는 나에게 아저씨는 친절히 충전기를 건네셨고, 나는 바로 단체톡에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가는 중이라고.


"당연한 건 없어요."

"네?"


"아가씨가(아이들과 야구장에 왔다고 했는데도 계속 아가씨라고 불러주셔서 참 좋았다.) 가족들과 야구장에 가는 것도 지금 무슨 공부하러 가는 것도 당연한 게 아니에요. 이런 일상이 있는 게 좋은 거예요."


"아~네... 그런데 제가 일정을 너무 한꺼번에 잡았나 봐요. 욕심냈어요"

"빨리 달려야겠네, 이런 게 다 행복이에요. 욕심낼 수 있는 거"


오늘 아이들과의 약속 때문에 야구장도 가야 하는데, 저녁에는 북클럽도 있는 날이다. 북클럽 멤버들에게 야구 보느라 시간이 안될 것 같다고 해도 뭐라 할 사람 없는데 늦게라도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결국 야구도 중간에 보다 나오고, 북클럽도 내 예상보다 늦게 생겼다.


택시 잡으려고 길에 서 있는 내내 욕심부린 나를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일상이 좋은 거라니. 욕심낼 수 있는 게 행복이라니. 아저씨의 말에 순간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




난 항상 혼자 내 할 일을 하고, 알아서 희로애락을 처리하는 게 익숙한 사람이다. 그런데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려면 삶까지 공유하게 된다. 그렇기에 처음에 북클럽을 모집할 때 고민했던 게 바로 이 지점이다. 감정을 공유하는 게 서툰 사람인데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삶의 일부를 공개할 수 있을까.


그런데 욕심을 부려 스케줄에서 빼고 싶지 않을 만큼 마음이 커졌다. 내 어설픈 모습도 그게 나라고 위로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그런 나를 오롯이 누릴 수 있는 그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현자 같은 택시 아저씨를 만나 내 욕심이 옳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단체톡에 또 메시지를 보냈다. 야구장에 있던 나를 기어이 나오게 한 사브작이라고 말이다.


그날의 책은 'I May be Wrong'. 하지만 이날만큼은 난 틀리지 않았다. 야구장을 뒤로하고 온 선택은 참으로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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