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기록

톨레도의 골목에서

그리스인 조르바 (1)

by namtip

그리스인 조르바를 말하려면 우선 스페인 톨레도로 떠나야 한다.

에닝을 처음 만난 건 스페인의 옛 수도 톨레도에서였다. (소설 속 조르바도 이렇게 등장한다.)


에닝은 독일의 의대생이었다. 지도를 들고 같은 자리를 헤매고 있었는데 그런 나를 보다 못해 성벽에 앉아있다가 펄쩍 내 앞으로 뛰어내렸다고. 나중에 그러더라.


지도에서 내가 가리킨 곳을 한참 보더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깔깔거렸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바로 뒤에 있는 그 문이 네가 찾던 문이라며 계속 웃었다. 허리를 꺾어가며 웃어젖히는 에닝을 보고 나는 처음 본 사이라는 걸 잊고 눈을 흘겼다.


에닌은 이미 톨레도에서 2주 동안 여행을 하고 있었고 앞으로 2주를 더 있을 예정이었다. 조그만 호텔을 통째로 빌려 과에서 온 거라는데 남들은 당일치기하는 여행지에서 긴 시간을 있다 보니 슬슬 지루할 때가 됐다고 했다. 톨레도에 있는 동안 한국 사람은 처음 본다며 일부러 알고 찾아온 거냐는 질문을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29살 9월. 오전 생방이 끝나고 2층 화장실 히터에 앉아 쉬고 있었다. 긴장된 2시간의 생방 후에 몇 분이라도 적막함이 필요했던 시절. 근데 그 2층화장실에 회사 홍보부 동료가 들어왔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서니 내가 여기에 종종 오는 걸 알고 있었다고 한다. 어색하게 얘기를 하다가 동료가 다녀온 스페인 여행 얘기가 나왔다.

단체 여행이 아닌 꼭 혼자 여행으로 가보고 싶은 곳이라며 총총 사라진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사무실로 돌아와 스페인행 표를 예매했다.


곧 서른이었다. 나이에 연연하지 않는 편이지만 특별하게 서른을 맞고 싶었다. 휴가도 내지 않고 후임 작가도 구하지도 못했는데 덜컥 비행기표를 사다니. 내가 미쳤어. 머리를 쥐어박으며 두 손을 모아 공손히 부장님께 갔다. 사실 그동안 매우 힘들었고 휴식이 필요하다는 변명과 함께 최대한 불쌍한 얼굴을 보여드렸다.

어차피 표 사놓은 거 아니냐고. 그럼 가야지 뭐. 이건 무슨 일. 이미 표를 샀다는데 잘 다녀오라는 말에 나는 말없이 꾸벅 목례를 했다. 그렇게 바르셀로나로 떠나서. 마드리드에서 귀국할 예정이었다.


남부에서 마드리드로 향하는 기차역에서 옆자리 사람에게 톨레도라는 곳이 있다고 들었다. 톨레도가 스페인의 옛 수도고 역사가 깊은 도시라면 꼭 가봐야 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다가 마드리드에 도착해서는 바로 톨레도로 향했다.


맥주 한잔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아까의 해프닝에 또 한 번 웃으며 통성명을 했다.

둘 다 29살 동갑. 음악을 좋아함. 여행을 좋아함.


에닝이 물었다.

자신이 동독에서 왔는지 서독에서 왔는지 궁금하지 않냐고 말이다. 글쎄. 너네 나라는 이미 통일 됐잖아. 나까지 굳이 그걸 따져야 할까. 너네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어디 출신이 건 무슨 상관이냐고 했다. 그리고는 나도 되물었다. 너는 내가 남한에서 왔는지 북한에서 왔는지 궁금하지 않니? 아니. 사실은 나도 궁금하지 않아.


꽤 심각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둘 다 명쾌한 답으로 마무리.


한 달씩이나 스페인에서 수학여행을 하다니 부럽다는 내 말에 에닝은 어깨를 으쓱했다. 둘 다 서른을 목전에 둔 터라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할 건지 공부는 적성에 맞는지 궁금했다. 에닝은 의대가 적성에 안 맞는다고 했다. 독일에서도 부모님이 공부를 잘하면 의대 가는 걸 원해? 당연하지.

우리와 다를 게 없구나. 나는 지금 하는 일은 좋지만 너무 삶이 팍팍해서 싫어. 그래서 이렇게 갑자기 여행을 온 거야. 라디오 작가라고 하면 다들 우와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결국 겉보기에 좋은 의대나 라디오 작가나 비슷하다며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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