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기록

톨레도의 골목에서

그리스인 조르바(2)

by namtip

성곽 끝에서 우리는 바다인지 강인지 모를 물결을 봤다. 생각해 보니 톨레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유명한 대성당 한번 들어가 보지도 않고 돌아왔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는데 에닝과 그 친구들을 만나서 밤새 얘기했던 술집만 기억난다. 톨레도에서 유일하게 독일 메뉴로 식당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던 독일인 아저씨.


술이 얼큰하게 취해 에닝이 나를 툭툭 쳤다. 지금 쓰고 있는 모자는 얼마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유품이라면서 할아버지가 그립다고 했다. 자기를 유일하게 이해해 준 사람이 할아버지였다나. 그 말을 듣고 영화 같은 대사라고 하니 멋쩍어했다. 탭댄스도 할아버지에게 배웠다면서 보여주었는데 오호. 꽤 잘하네. 에닝, 너는 의사를 하더라도 그 탭댄스는 절대 잊으면 안 되겠다. 꼭 계속 배워.


서른이야 서른. 열댓 명의 우리는 서른이라니 말이 되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둘러봤다.


서른을 기다리는 싱숭생숭한 마음은 똑같구나. 아무렇지도 않게 맞이하려 하지만 그렇다고 또 너무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닌. 그 동일한 마음들이 모여 왠지 모를 서글픈 기운이 몰려들 때쯤 주인아저씨가 우리 옆에 자리를 잡았다.


조르바처럼 살아.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이 있거든.
그렇게 세상이 너네 거인 거 마냥 누리며 살아.


"먹고 마십시다. 보스 힘을 내요. 노래를 불러봐요. 노래 불러요.
젊은 친구!...."



자기보다 어린 젊은이에게 스스럼없이 보스라 부르며 훌쩍 떠났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오는 조르바. 그 소설 속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우리는 맥주잔을 부딪치며 치얼스 조르바를 외쳤다.


동이 틀 때까지 공짜 맥주를 마시며 우리는 서른이 되어서도 톨레도의 그 밤을 잊지 말자고 했다.


막상 서른이 되자 서른이 별거 아니라는 듯 무던하게 지나갔는데 오히려 마흔이 되자 조르바가 더 생각이 난다. 그리고 허세를 부리며 조르바를 읽었던 게 약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조르바가 알려준 자유로움 덕에 서른을 무사히 넘기고 마흔이 되었다.


연락해. 독일에 오면. 그래. 독일에 가서 에닝이라고 부르면 되지?


에닝과 친구들과 나는 연락처를 주고받지 않았다. 운명이라면 우리 어디서든 만날 거라고 드라마 같은 약속을 했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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