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야간자율학습 전 저녁 시간. 퇴근하시던 담임선생님께서 다시 교실로 오셔서 나를 부르셨다. 교문 앞에서 우리 엄마를 만나셨다며 얼른 내려가보라고 하셨다.
핸드폰은 당연히 없고 남들 다 있던 삐삐도 없던 시절이었다. 약속 없이 그 시간에 엄마가 교문에 와 있다니 무슨 일일까. 교복 치마 아래 체육복 바지를 겹쳐 입고 삼색 슬리퍼를 신은 전형적인 여고생 포스를 풍기며 교문으로 가자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큰 쟁반을 들고 계셨다. 그리고 쟁반 위에는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 빨간 보자기로 감싸진 무언가가 턱 하니 올려져 있었다.
“엄마, 이게 뭐야?”
“응~너 아침에 삼계탕 먹고 싶다며, 저녁에 먹으라고 해왔지”
학교에서 삼계탕을 먹어도 되는 건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더 생각할 시간도 없이 엄마는 쟁반을 받아 들라며 재촉을 했고, 나는 얼떨결에 손잡이 부분까지 뜨끈해진 쟁반을 받아 들었다.
엄마는 내가 살짝 뜨뜻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먹고 난 그릇은 걱정하지 말라며 저녁 시간 끝날 때쯤에 다시 가지러 오겠다고 하셨다. 지금 그릇 때문에 그런 게 아닌데. 엄마는 정말 내 마음을 모르는 건지 집에 돌아가는 그 순간에도 그릇은 걱정 말라고만 했다. 학교에서 집이 가깝다는 사실이 그렇게 원망스러운 적이 없었다.
우선 교실에 들어가기 전에 이 상황을 정리해야 할 듯싶었다. 보자기를 슬쩍 들춰보니 김이 송골송골 맺힌 유리 뚜껑 아래로 하얀 다리가 실에 묶여 다소곳이 누워있는 닭 두 마리가 보였다.
무려 닭이 두 마리다. 아무리 내가 털털하기로서니 나름 여고생 아닌가.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도시락은 칸칸이 나누어진 분홍색 도시락통에 방울토마토가 두 알 정도 담겨 있고 잘 말아진 계란말이가 놓여있으며 밥통에는 예쁜 오곡밥 위에 콩으로 하트모양이 그려져 있는 그런 도시락이었다.
그런데 내 앞에 있는 도시락은 꿈꾸던 도시락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묵직함을 풍기고 있었다. 어제도 그제도 집에서 보아왔던 냄비. 그리고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를 아찔한 빨간 보자기.
농부 아저씨가 모내기를 하다가 받는 새참에도 삼계탕은 없을 것 같은데, 나는 학교 저녁 시간에 맞춰서 엄마에게 삼계탕을 건네받았다. 운동장 옆 계단에서 냄비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왔다. 같이 저녁 먹기로 한 친구들은 이미 한입 두 입 밥알을 오물거리며 도대체 얘는 엄마를 만나러 간다더니 왜 안 오는지 궁금해할 시간이었다.
사브작 매거진을 구독해주시면 매주 11명의 브런치 작가들이 새로운 글감으로 찾아갑니다.
하나의 글감, 열한개의 이야기
골라보는 재미가 있는 사브작 매거진
사진 출처: 노블레스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