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로 들고 갈지 말지 망설이는 사이 내 배는 계속 꼬르륵댔다. 하필 또 냄새는 구수할게 뭐람. 배고픔도 참을 수 없었지만 큰 냄비를 들고 교실까지 갈 자신도 없었다. 괜한 창피함이 밀려왔다.
중대한 결정을 해야 했다.
그래, 반에 들고 가서 절대 친구들 앞에서는 열어보지 말자. 자율학습 담당 선생님께 따로 말씀드리고 빈 교실에서 따로 먹던지 하는 거야.
냄비가 얼마나 컸던지 쟁반을 들고일어나니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1층을 지나 2층으로 갔다. 다른 반 친구들이 입에 칫솔을 물고 돌아다니는 걸 보니 거의 다 저녁을 먹고 정리할 시간인듯했다.
드디어 우리 반 교실 앞.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고 빼꼼히 열린 문을 발로 열었다.
그래도 의리 있게 나를 기다리며 천천히 저녁을 먹던 친구들이 나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다 뭐야?”
“무슨 냄새가 이렇게 좋아?”
아뿔싸. 냄새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슬쩍 분위기를 살피니 반응이 나쁜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보자기를 들춰 보여주기라도 해볼까 싶은데 이미 친구들이 삼계탕 냄새를 맡고 강아지들처럼 몰려들었다. 그리고는 행여라도 냄비 뚜껑이 열려 국물이 쏟아질까 봐 엄마가 꽁꽁 묶어둔 빨간 보자기를 힘들여 풀기 시작했다.
“삼계탕이다! 우와!”
삼계탕이란 소리에 우리 반은 물론 복도에 있던 옆반 친구들까지 교실로 뛰어 들어왔다. 학교 저녁 시간에 친구 엄마가 해 온 삼계탕을 먹어보겠다고 너도나도 손을 뻗으며 달려오던 여고생들.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혼자 빈 교실에서 먹을 계획이었는데 친구들이 좋아해 주니 덩달아 나도 신이 났고 우리는 서로 닭고기를 뜯어 먹여주며 “맛있다!”를 연발했다.
저녁 시간이 끝나는 종소리에 맞춰 우리는 밥을 말아 국물까지 싹싹 다 먹었고, 약속대로 엄마에게 그릇을 반납하러 갈 시간이 왔다. 친구들 몇 명이 쟁반과 그릇을 들어준다며 교문까지 함께했다.
“아줌마, 너무 맛있었어요! 다음에는 떡볶이도 많이 해주세요!” 삼계탕 덕에 배가 두둑해진 친구들이 호기를 부렸다. 나는 그런 소리 말라며 친구들의 입을 틀어막고 다시 교실로 향했다.
그날 저녁 엄마는 집에 돌아온 나를 보자마자 방에서 뛰어나오시며 정말 떡볶이도 해줄지 물으셨고, 나는 손사래 치며 괜찮다고 했지만 왜 이런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 며칠 뒤 엄마는 정말로 냄비 채 떡볶이를 해서 들고 오셨다.
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들과 저녁 모임이 있었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친구들은 우리 엄마 이야기를 한다. 딸이 먹고 싶다는 말에 학교로 삼계탕을 끓여 온 엄마는 대한민국에 우리 엄마뿐일 거라고.
다음 날 아침.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들과 고등학교 3학년 때 먹었던 삼계탕 얘기를 했다고 말씀드리며 통화를 마쳤다. 그런데 조금 있다 전화벨이 다시 울린다.
엄마다.
설마 하며 전화를 받으니 닭 사다가 그때처럼 끓여주냐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역시 이번에도 내 예감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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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노블레스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