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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tip Jul 23. 2023

바람부는 날의 반성문

가족들이 다 자는 밤. 방 안에 홀로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시간이다. 창문을 여니 선선한 바람이 분다. 여름밤에 이따금 부는 시원한 바람은 쓸쓸하다. 더위를 쫓느라 묵혀놓은 생각들이 바람 덕분에 하나둘씩 깨어난다.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다.


누군가와 이야기할 시간도 없이 벌써 며칠이 흘렀다. 간간히 떠올리고는 있었는데 비가 내려주어 하염없이 흘러가는 빗물만 바라보았다.


시인들이 가득한 세상을 떠올려 본다. 함부로 단어를, 구절을, 문장을 뱉지 못하는 그런 세상. 머리에 떠오르는 말을 며칠씩 묵혀두고 다시금 꺼내어 보는 그런 세상말이다. 시는 그렇게 완성이 되고 어렵게 탄생한 시는 사람을 살린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하루종일 손가락을 움직여 메시지를 보내어도 단 한 편의 시도 완성하지 못한다.

물을 떠서 먹을 갈고 붓털을 다듬어 시간을 벌자. 그리고 지금부터 시를 쓰자.


죽어가는 이도 살릴 시를 쓰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날 밤. 어두운 교실에서 홀로 외로웠을 젊은 마음에게 앞으로 시인이 되어 보답하겠노라고 반성문을 보낸다.


<돌아와 보는 밤>    윤동주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 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 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던 길이 그대로 비 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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